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비겁하게 살 권리, 가난하게 살 권리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비겁하게 살 권리, 가난하게 살 권리

    얼마 전 ‘소확행’이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듣기 좋은 말이다. 부자가 아니면 어떠랴. 해외여행 맘대로 못 가고, 외식은 동네 중국집 정도로 만족하고, 아이들 사교육 좀 부족한들 무슨 대수랴. 행복은 눈높이라는 말도 있으니 형편, 사정 내에서 큰 욕심 없이 소소한 일에 만족하며 살면 그만 아닌가.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내 삶도 소위 ‘소확행’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싶다. 결혼 후 서울에 전셋집을 마련했지만, 점점 외곽으로 떠밀리다가 10년쯤 전 이곳 변두리 마을에 정착했다. 아쉽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야 열 평 안팎의 비좁은 다세대주택 전세방이었지만, 이곳에 오니 똑같은 집세로도 두세 배 넓은 아파트가 생겼다. 집을 나서면 어디나 산과 계곡과 강이 있고 작은 텃밭이나마 생전 처음 내 손으로 흙을 만지고 작물을 키울 기회도 주어졌다. 경쟁이 덜한 덕분인지 아이들도 큰 부침 없이 자라 주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만족, 그야말로 ‘소확행’이 아닌가. ‘소확행’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실이든 아니든) 3S정책(s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여름, 잡초 이야기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여름, 잡초 이야기

    지인이 텃밭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름철 잡초에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단다. 장마철 즈음의 텃밭은 작물이 크는 모습이 보일 정도다. 소나기 한 줌, 한나절 뙤약볕이면 어느새 오이가 하나, 호박이 둘 뚝딱 매달린다. 그 작물보다 쑥쑥 더 잘 자라는 게 잡초다.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찾기는 하지만, 지난번에 풀을 벤 자리에 벌써 달맞이꽃, 개망초가 무릎 높이까지 올라왔다. 2015년 농촌진흥청 발표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농경지의 악성 잡초는 모두 619종이다. 불과 50평 남짓의 내 텃밭에도 40~50종은 되는 듯하다. 개망초, 민들레, 애기똥풀, 환삼덩굴, 뱀딸기, 쇠비름, 바랭이, 질경이, 방동사니, 명아주, 닭의장풀, 비름나물 등 한여름 잡초와의 싸움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제초제를 쓰면 문제는 간단할지 몰라도, 나로서는 농촌진흥청처럼 어느 잡초가 악성인지 구분할 자신이 없다. 더욱이 제초제는 어딘가 나치 정권의 인종청소 같은 느낌이다. 내가 심은 작물 아니면 다 나와! 이 풀, 저 풀에 유대인처럼 ‘잡초’라는 주홍글씨를 달아준 뒤 모조리 제초제 가스실로 보내야 하는 걸까? 꽃 보기가 궁한 이른 봄 텃밭 가득 자리잡은 오랑캐꽃도? 어디선가 날아와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60 나이에 BTS에 빠지다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60 나이에 BTS에 빠지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BTS의 웸블리 공연을 보았다. BTS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 건 1년 전쯤 아내 덕분이었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팬을 자임하며 늘 그들의 노래를 듣고 유튜브를 검색한다. 그런데 귀동냥으로 얻어 듣던 노래에 나까지 흠뻑 빠져 요즘에는 종종 BTS의 노래를 틀어 놓는다. 올드팝, 7080 통기타 노래를 들으며 작업하던 나로서는 신기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웸블리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유명해진 스타디움이다. 최고의 뮤지션이 아니면 대관조차 어렵다는 곳. BTS는 첫날 6만석을 불과 90분 만에 매진하고 다음날까지 이틀간에 걸쳐 공연을 이어 갔다. 한국인으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건만, 그런데 묘하게도 BTS의 팬임을 자임하는 여성들이 이따금 감동을 전할 뿐 SNS에는 공연 소식이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손흥민이 골을 넣거나 류현진이 1승을 달성하면 너도나도 링크를 걸며 한마디씩 논평을 하고, 지금은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 얘기가 SNS를 점령한다. 우리 동포가 해외에서 맹활약을 펼칠 때마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좋아하건만, 유독 BTS의 경우에만 야박하기 이를 데 없다. 어른, 특히 남성들에게는 아예 그런 그룹이 존재하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

    어울리지 않게 대학원 박사과정 전공이 페미니즘이었다. 1990년대 중반경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얼떨결에 발을 담갔다가 결국 페미니즘 이론에 매료된 것이다. 페미니즘에 혹했던 이유는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평등한 세상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학위를 포기하고 공부를 중단하기는 했지만, 그때 접한 페미니즘 세계관이 지금껏 내내 내 시각을 잡아 주고 삶을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일 흥미로웠던 주제가 ‘언어’다. 세계가 유럽ㆍ백인ㆍ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언어는 유럽ㆍ백인ㆍ남성이 지배하고 그 나머지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지배자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학작품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언어를 도구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또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를 살폈다. 자크 라캉에 따르면 언어란 개별 인간 이전에 존재하고 개별 인간은 언어를 받아들이면서 사회화한다. 여성은 스스로의 언어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성의 언어를 체득하며 사회화하므로 곧바로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고 만다. 남성 중심 언어에서 남성은 기준이 되고, 여성은 배제되거나 부차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로이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봄을 보다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봄을 보다

    봄이다. 긴 겨울이 끝나 무엇보다 먼저 텃밭을 찾았다. 3월 말이면 하지감자를 심기에 지금쯤 퇴비를 하고 자리도 잡아 주어야 한다. 우선 마늘밭에서 겨울 보온용 볏짚을 들어내고 비닐 터널도 시원하게 걷어 주었다. 몇 달 만에 시원하게 지하수를 뿌리자 이제 막 파란 잎을 드러낸 시금치, 봄동, 상추도 싱싱하게 빛을 발한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엔 아내와 함께 주변 산책도 한다. 들깨밭에는 벌써 냉이가 잔뜩 올라왔다. 이제 가평의 어느 오지는 냉이, 쑥을 시작으로 마음씨 좋은 장모님처럼 이것도 내주고 저것도 내어줄 것이다. 냉이, 전호, 돌미나리는 잔뜩 따다가 데쳐서 얼려 두고, 두릅, 엄나무 순은 장아찌로 만들고, 다래 순은 묵나물로 만들어 두면 야채가 귀한 겨울에 훌륭한 반찬거리가 돼 준다. 한반도는 봄이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 다시 찾아온 봄바람과 희망은 그 자체로 고맙고 소중하기만 하다. 그늘진 곳에는 아직 얼음이 남아 있고, 꽃샘추위도 미세먼지도 극성이지만, 잠시 고개만 돌리면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봄을 만난다. 매화, 산유수, 영춘화는 이미 서울까지 올라오고 남녘에서는 벌써 목련, 벚꽃 소식까지 들려온다. 잠시 발품을 팔아 가까운 산 북사면에 오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굿바이, 스카이캐슬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굿바이, 스카이캐슬

    지난해 말 완성된 문재인 정부 2기 행정부 장·차관의 면면을 보면 서울대 출신이 58명으로 전체의 40%에 달한다. 연세대(14), 고려대(11)를 더하면 스카이 출신은 60%에 가깝다. 박근혜 정부 6개월 행정부의 1급 이상 고위공무원 중 스카이 출신은 서울대 95명, 연세대 26명, 고려대 26명 등이었다. 과거 군사정권의 폭력에 질려서일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소위 엘리트 계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느 채널이든 교수, 변호사, 관료들이 패널로 나와 자신들의 지식을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해 준다. 똑똑한 사람들이 일을 잘하겠지? 설마 군인들처럼 가두고 고문하고 함부로 죽이기야 하겠어? 막연하나마 우리 기대는 그랬을 것이다. 인기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코디’라는 직업명을 처음 들었다. 좋은 대학, 좋은 전공을 대가로 20억~25억원을 부른다는데 위의 통계를 보면 비싼 것도 아닌 듯싶다. 스카이를 나와야 저렇듯 나라에서 불러 주고 위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으니 왜 아니겠는가. 아니, 잘하면 20억원의 투자는 200억원, 2000억원으로 돌아오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스카이가 엘리트이긴 한 걸까? 기대대로 일을 잘하기는 했을까? 사실 지난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우물에는 숭늉이 없다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우물에는 숭늉이 없다

    어느 출판사 대표님과 만났을 때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구글번역기로 번역을 했더니 결과가 기가 막혔다. 이렇게 인공지능(AI) 번역기가 발달하면 번역가가 필요 없어질 텐데 그럼 당신 같은 번역가는 어떻게 하느냐.” 페이스북에는 이런 얘기도 있었다. “AI 번역기가 완성되면 학문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변방의 논문도 제약 없이 읽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어서 그날이 오기를 빈다.” 정말로 머지않아 그렇게 되리라 믿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럴까? 나도 한 번 상상해 보자. 작가가 책을 쓰면 독자는 PDF파일을 직접 구입해 AI 번역기를 이용, 모국어로 번역한 뒤 프린트하거나 e북리더기로 읽는다. 그럼 언어와 경제의 장벽은 사라지고 거의 실시간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겠지? 다만, 출판사 대표님이 놓친 사실이 하나 있겠다. 행여 AI 번역의 시대가 온다면 번역가보다 출판사가 먼저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정말 가능할까? 그것도 가까운 미래에? 2017년 2월 17일, 세종대에서 흥미로운 대회가 있었다. AI 번역기와 인간 번역가의 번역 대결. 번역가 4인과 구글번역기, 네이버번역기 파파고, 시스트란번역기 등이 기술, 비즈니스, 시사 영역 세 부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며칠 전 한영 번역을 하며 ‘신입생’을 ‘a freshman’으로 했다가 아차 싶어 얼른 ‘a first-year student’로 바꾸었다. 나름 조심한다 하는데도 이따금 실수를 하고 만다. 그러고 보니 페이스북에 ‘딸이 시집 갈 때’라고 썼다가 황급히 ‘딸이 결혼할 때’로 바꿔 적기도 했다. 어찌 됐든 시대에 걸맞은 표현은 아니지 않은가. 어느 모임에선가 후배 커플을 만났을 때 얘기다. 여자는 꼬박꼬박 존대를 하고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야, 너”라고 불러 난감한 적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남자가 2년 후배라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쫓아다니고 여자가 오히려 면박을 주던 사이였건만,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역전된 관계를 받아들였다. 이런 식의 고착화된 성 역할은 ‘구글’에도 존재한다. 얼마 전 성 구분이 없는 터키어 ‘O bir asker’(군인이다)를 ‘He’s a soldier’로, ‘간호사’는 ‘She’s a nurse’로 번역해 한바탕 시끄러웠다. 사실 우리 번역서를 펼쳐 보면 부부 사이에서 남자는 하대를, 여자는 존대를 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영어야 존대, 하대의 구분이 없을 텐데도 번역자들은 무슨 대수냐는 듯 그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남성의 당연한 특권이란 어디에도 없다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남성의 당연한 특권이란 어디에도 없다

    번역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제일 먼저 아내한테서 부엌을 빼앗았다. 그간 직장이 멀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내는 직장에 다니고 난 드디어 재택이 가능해졌기에 당연한 결정이었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맛을 낼 자신이 없었다. 요리라고는 오래전 1~2년 자취생활이 고작이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또 함부로 덤볐다가 중도에 포기하면 우스운 꼴만 남을 텐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난 여전히 부엌을 드나들며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 낸다. 육수가 뭔지도 모르던 사내는 이제 된장찌개, 나물에서 찜, 바비큐까지 못 하는 요리가 없다. 의외의 선택에 선물도 따랐다. 아내와 아이들의 신뢰를 얻고 살얼음처럼 위태롭던 가정은 이제 어느 집보다 든든하고 포근한 보금자리로 변신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요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로는. 집에서 부엌을 책임진다고 하면 남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요리를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반응한다. 아무래도 집에 여자가 있는데 나 같은 중늙은이 남자가 육수를 내고, 파를 썰고 설거지를 한다니 신기한 모양이리라. 하지만 토요일, 일요일에 떡볶이를 만들고 짜파게티를 끓인다면 모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오역과 ‘까방권’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오역과 ‘까방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의 오역 문제로 시끄러울 때 나도 아들과 가벼운 논쟁을 벌였다. 아들은 마블 덕후답게 “오역이 치명적이라 용서할 수 없다”는 쪽이고 나야 번역가 신분이니 “일부 오역이 있다는 이유로 밥그릇까지 걷어차야겠느냐”며 투덜댔다. 문제가 된 부분은 ‘the endgame’이라는 단어였는데, ‘막판이다’가 아니라 ‘가망이 없다’는 식으로 번역해 전체 맥락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오역이 문제가 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모쿠사쓰’ 이야기는 특히 유명하다. 1945년 포츠담 회담 이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기대하던 연합군은 스즈키 간타로 총리가 뜻이 모호한 ‘모쿠사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7월 28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총리는 “대답을 유보한다”는 뜻으로 그 단어를 인용했으나 연합군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번역한 것이다. 단어 하나가 빚어낸 비극치고는 너무나 끔찍하다. 한국에서 가장 재밌는 오역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My dear, you flatter me”를 “비행기 태우지 말아요”라고 했으니 그 자체로 오역이라 할 수야 없다. 다만 ‘오만과 편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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