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체조 올림픽 금메달 도전사

한국 체조 올림픽 금메달 도전사

입력 2012-08-07 00:00
수정 2012-08-0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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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평행봉에서 은·동메달 각각 4개’양태영 오심’ 사건으로 금메달 도둑맞기도

특별취재단 = 1960년 로마 올림픽부터 올림픽에 출전해 온 한국 체조가 첫 금메달이라는 숙원을 풀기까지 52년이 걸렸다.

한국은 출전권을 얻지 못한 1972년 뮌헨, 1976년 몬트리올 대회와 정치적인 이유로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대회를 빼곤 모든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그때마다 2%가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역대 대회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4개씩 따낸 한국 체조는 안방에서 열린 1988년 서울 대회에서 첫 메달을 구경했다.

도마에 출전한 박종훈이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메달의 계보가 시작됐다.

1992년에는 도마의 유옥렬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1991년과 1992년 세계선수권대회 도마를 잇달아 제패한 그는 금메달의 염원을 풀어줄 후보로 급부상했으나 깜짝 기술을 선보인 비탈리 셰르보(독립국가연합)에게 밀려 동메달에 머물렀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는 한국 체조가 세계를 향해 뻗어나간 원년으로, 한국 남자 체조는 이번 런던올림픽까지 6회 연속 단체전 출전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도 두고두고 아쉬운 대회로 꼽힌다.

’여 1’과 ‘여 2’ 기술을 앞세워 도마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여홍철이 착지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면서 은메달에 그쳤다.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흩뿌리던 여홍철의 모습은 여러 팬의 마음에 지금도 애잔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2000년 시드니 대회와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평행봉의 최강자 리샤오펑(중국)에게 막혀 이주형과 유원철이 은메달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 톈진 세계선수권대회 평행봉 챔피언인 이주형은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사냥에 나섰으나 깔끔하면서도 완벽한 연기를 펼친 리샤오펑에게 무릎을 꿇었다.

리샤오펑은 홈에서 열린 베이징 대회 때 8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 유원철을 누르고 또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의 앞길을 두 번째로 가로막았다.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발생한 ‘양태영 오심 사건’은 체조계에 큰 치명상을 입혔다.

당시 개인종합에서 1위를 달리던 양태영은 평행봉에서 스타트점수 10점짜리 연기를 펼쳤으나 심판이 0.1점 낮은 9.9점짜리로 매긴 바람에 졸지에 금메달을 미국의 풀햄에게 내주고 동메달로 밀렸다.

눈앞에서 금메달을 뺏긴 체조협회와 체조인들은 뒤늦게 심판진에 항의했으나 국제체조연맹(FIG)은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까지 가는 치열한 법리 싸움이 전개됐으나 판정을 뒤집지는 못했다.

심판진의 실수를 인정한 FIG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체조의 10점 만점 제도를 폐지하고 상한선이 없는 새로운 점수 체계를 발표했다.

스타트점수(기술난도)와 실시(연기) 점수의 합으로 이뤄지는 새 체계에서 선수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 때마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

결국 도마에서 최고 난도 기술을 펼치는 양학선이 금메달 숙원을 풀 수 있던 데에는 양태영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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