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이 제동 건 전관예우 악습

[사설] 법원이 제동 건 전관예우 악습

입력 2015-08-26 18:06
수정 2015-08-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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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해상작전 헬기 도입 비리로 구속기소된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이 결국 전관(前官) 변호사 선임을 스스로 포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이 전관 변호인의 입김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재판부를 두 차례나 재배당한 노력의 결과다. 김 전 처장은 첫 재판을 앞둔 이달 초 법무법인 KCL 등의 변호사 10명으로 막강 변호인단을 꾸렸다. 사건을 맡은 재판장과 고교 선후배 관계인 변호인이 포함되자 서울중앙지법은 재판부를 바꿨다. 이런 조치에 김 전 처장은 바뀐 재판장과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적 있는 변호인을 다시 선임했고, 법원이 재판장을 또 교체하려 하자 어쩔 수 없이 전관 변호인 선임을 철회한 것이다.

전관예우 폐습의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일이다. 법원이 재판장을 바꿨을 때 10명의 변호인단은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사임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빚었다. 처음부터 전관예우를 염두에 두고 변호를 맡았다가 혜택의 여지가 없어지자 뒤로 빠졌다는 방증이다. 변호인이 몽땅 사임한 뒤 법원은 국선변호인을 직권 선임해 줬으나 김 전 처장은 이를 마다하고 어떻게든 재판장과 끈이 닿을 수 있는 변호인을 다시 찾았다. 돈 있는 의뢰인과 전관 변호사들이 결탁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폐단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대표적 사례로 낱낱이 공개된 셈이다.

이번 일은 사법부 개혁에 있어 의미가 크다. 법원 내부에서 전관예우 폐해를 걷어내려는 노력이 시작됐고, 법원의 자정의지로 부조리 척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서울중앙지법은 전관예우를 근절하려는 취지에서 이달부터 ‘재판부 재배당 활성화 대책’을 시행했다. 변호인이 재판장이나 재판부 소속 법관과 학교, 사법연수원, 같은 직장 등에 연고가 있으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넘기는 제도다. 성완종 리스트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이 기준에 걸려 재판부를 재배당받았다.

전관 변호사가 안면 있는 재판장에게 전화 한 통 걸거나 상고 이유서에 도장 한 번 찍어주는 것으로 몇 천만원씩 받고, 성공보수까지 챙기는 관행은 이제 세상이 다 안다. 이는 사법부를 넘어 사회통합에도 찬물을 끼얹는 악습이다. 우리 국민의 사법부 신뢰도가 세계 꼴찌 수준이라는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았나. 사법부 불신은 더 내려갈 데조차 없다. 전관예우 근절 대책이 서울중앙지법에서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동참으로 전국의 지방법원으로까지 자정 움직임이 확산돼야 한다.
2015-08-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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