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4-12-21 02:08
수정 2024-12-2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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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고내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소나무숲.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소나무숲. 제주 강동삼 기자


#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렇다”‘2024년 12월 3일 22시 30분, 대한민국 헌법이 유린당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심장이 멈췄습니다… 민주주의의 심장이 다시 뛰도록 심폐소생을 해주신 모든 분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이 민주주의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지킨 주역이십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보고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저는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비상계엄이 실제로 선포되었을 때, 1980년 5월 광주는 2024년 12월의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44년 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섰던 광주시민들의 용기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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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내봉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진주강씨묘역 주변의 소나무들. 제주 강동삼 기자
고내봉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진주강씨묘역 주변의 소나무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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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내봉으로 가는 초입에 있는 괴양물. 제주 강동삼 기자
고내봉으로 가는 초입에 있는 괴양물. 제주 강동삼 기자


# 죽은 자가 산 자와 가까이 사는 곳 고내봉…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묘자리가 많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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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소나무와 고내봉
<47>소나무와 고내봉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박찬대 의원이 지난 12월 14일 오후 4시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을 했습니다. 7일 첫 투표에 이어 두번째 투표를 통해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이 가결됐습니다. 국민은 2주만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습니다’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은 비극의 역사에서 반복된 학습 효과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의 교훈으로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섰습니다. 죽은 자들의 가르침이 산 자들을 광장으로 나서게 했다는 생각입니다.

일주일 넘는 집회로 심신이 피곤한 도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탐방하기 좋은 오름이 있습니다. 제주시내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더욱 오르기 편한 산입니다.

애월읍 고내리 산 3-1번지 일대에 있는 고내봉으로 가는 길에는 죽은 자가 산 자와 가까이에 삽니다. 유난히 묘역이 많습니다. 고내마을 남동쪽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풍수지리적으로도 매우 좋은 자리에 잡아서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해안가 마을과 가깝고 그만큼 산세가 좋아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내봉을 오르다 보면 발길 닿는 곳이 대부분 죽은 자들이 쉬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같이 전망좋은 산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터가 좋으니 죽은 자의 영혼도 편안할 듯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고내봉 인근에는 가장 오래된 귤나무가 있다던데 이날은 눈으로 확인을 못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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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색채디자이너 장필립 랑클로(Jean Phiilippe Lenclos)가 디자인한 더럭분교. 제주 강동삼 기자
세계적인 색채디자이너 장필립 랑클로(Jean Phiilippe Lenclos)가 디자인한 더럭분교.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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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사라진 연화지. 제주 강동삼 기자
연꽃이 사라진 연화지. 제주 강동삼 기자


고내봉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갈래지만, 더럭초등학교와 연화지를 돌아보고 인근에 차를 세우고 고내오름으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괴양물이 가장 먼저 반깁니다. 연못은 물 웅덩이만큼만 차 있습니다. 고양이 고의 어원인 괴자와 버들나무 양자를 써서 괴양물이라 했답니다. 용출량은 적지만 고내봉에 내린 빗물이 땅 속을 흘러 이곳에 모여 나오는 용천수이며, 상가리 주민들이 사용하던 연못이라고 합니다. 연못은 둘로 나뉘어 있는데 오름쪽 좁은 연못은 식수용, 큰길 남쪽 넓은 연못을 우마급수 및 빨래터로 썼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은 부레옥잠, 물양귀비 등이 자라는 생태학습장이 됐습니다.

진주강씨묘역을 지나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하가리 고내봉 큰신머들 하르방당(애월읍 고내리 산 13·11번지)이 나옵니다. 하가리 마을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정초에는 무당이 상주하면서 복을 빌고 1년 운세를 점치기도 했답니다.

큰 바위가 자리잡고 있는 이곳에서는 쭉쭉 뻗어자라는 곰솔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그 곰솔을 따라 오르다보면 무덤들이 즐비합니다. 오름으로 가는 건지, 묘지를 찾아 가는 건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하르방당을 조금만 지나면 운동시설이 나오고 이윽고 정상 전망대에 다다릅니다. 고내봉 정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한라산도 아득하게 보입니다. 지금은 공용기지국(통신시설)이 자리해 있지만, 봉수대가 있던 오름이어서 그런지 오름에 ‘봉’이 붙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애월항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한라산이 펼쳐집니다. 표고 175.3m, 비고 135m 인 이곳은 봉수대가 있어 망오름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답니다. 고려 공민왕(1352년)때 설치된 고내봉 봉수대는 동쪽으로 수산봉수, 서쪽으로 어도봉수와 통신했다고 나옵니다. 애월진 소속의 고내봉수는 별장 6명, 봉수 24명이 배치되어 근무했으며 토축한 외겹 원형 봉수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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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내봉 정상에서 펼쳐지는 남쪽 한라산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고내봉 정상에서 펼쳐지는 남쪽 한라산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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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피해사찰인 고내봉 서쪽 초입에 있는 보광사 경내. 제주 강동삼 기자
4·3피해사찰인 고내봉 서쪽 초입에 있는 보광사 경내. 제주 강동삼 기자


# 4·3피해사찰 보광사를 보면서 그날의 공포가,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납니다내려가는 길 오름 중턱에는 1920년에 창건된 보광사라는 절이 나옵니다.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절입니다. 이 절은 4·3피해사찰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1948년 초토화작전 시기인 12월 5일에 해안마을인 애월리로 소개되고 토벌대에 의해 보광사의 당우 모두가 파옥되었다고 합니다. 보광사에 거주하던 스님도 토벌대에 총살당했습니다. 이후 애월리 초가법당에 모셨던 불상을 봉안해 1955년 고내봉 본래 자리에 복원했습니다.

지난 12월 3일 계엄선포에 제주도민들은 유독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76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서였습니다. 1948년 4·3이 발생하자 이승만 정부는 그해 11월 17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해 강경 진압했습니다.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굴에 기거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때가 어제일 처럼 떠오르는 악몽입니다. ‘속솜(침묵의 제주어)’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들통나면 연좌제에 걸려 자식들까지 평생 고생하며 살아야했기에 숨죽이는 삶이었습니다.

그때 3만여명이 넘게 희생당했습니다.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듯, 도민들은 들고 일어섰습니다. 더욱이 12·3 비상계엄을 사전에 모의한 계엄문건에서 제주4·3을‘ 제주폭동’이라고 명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공분을 샀습니다.

제주도기자협회(회장 김익태)는 12월 4일 성명서를 통해 “제주도민들에게 4·3 당시의 공포가 엄습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성명서의 일부입니다.

‘계엄! 국가 비상사태 시 행정부 수반이 군대를 동원해 치안과 사법권을 행사하는 초유의 비상조치입니다. 이 단어는 4·3의 상처를 간직한 제주도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입니다.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소위 ‘초토화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 계엄령 문서에는 이승만의 서명과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었고, 모든 국무위원의 서명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엄령은 불법이었습니다. 제헌헌법은 계엄 선포를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당시에는 이를 뒷받침할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불법적인 계엄령은 “사람을 함부로 죽여도 되는 제도”로 변질되며, 제주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처럼 그동안 독재정권은 계엄령을 정권 장악과 유지를 위한 도구로 악용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초들의 삶을 짓밟고 그들의 피를 대가로 삼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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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 대웅전. 제주 강동삼 기자
보광사 대웅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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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 절 입구 범종각. 제주 강동삼 기자
보광사 절 입구 범종각. 제주 강동삼 기자


#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정의가 살아 숨쉬기를고내봉(고내오름, 고니오름, 망오름)은 보광사로 올라가면 금세 오를 수 있어 이곳으로 탐방하기를 강추합니다. 차로 보광사 위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주차장이 있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고내봉은 또 한림항을 시작으로 걷는 올레 15-A코스를 따라 바다가 아닌, 납읍숲길을 따라 걸었다면 15㎞쯤에서 만나게 되는 오름입니다.

4·3피해사찰 보광사를 보는 순간,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사찰을 둘러싼 푸르른 소나무를 보면서 더욱 깨닫습니다.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리 사회는 진실과 정의가 살아 숨쉬기를 바랍니다. 저 푸른 소나무숲을 보고 있자니 절로 바비 킴의 ‘소나무’가 새어나옵니다.

‘두 눈을 감으면 선명해져요/ 꿈길을 오가던 푸른 그 길이/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으면 소리없이 웃으며 불러봐요/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너/… 바람이 얘기해줬죠 잠시만 숨을 고르면/소중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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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해변 바닷길 산책로. 제주 강동삼 기자
한담해변 바닷길 산책로.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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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읍 한담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애월읍 한담해변.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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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야에서 바라보이는 수평선은 3㎞ 정도 떨어져 있다죠. 멀리 비양도가 직선거리로 3㎞ 떨어진 지점에 한담해변이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우리 시야에서 바라보이는 수평선은 3㎞ 정도 떨어져 있다죠. 멀리 비양도가 직선거리로 3㎞ 떨어진 지점에 한담해변이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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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해변 바닷길 풍경. 제주 강동삼 기자
한담해변 바닷길 풍경. 제주 강동삼 기자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갈래… 노을이 아름다운 ‘한담해변’고내봉을 내려와 우울한 심신을 달래기 제격인 장소로 달려갑니다. 한담해변입니다. 곽지해수욕장으로 가기 전에 만나는 산책로입니다.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고 외국인관광객들이 필수코스처럼 들르는 곳입니다.

예쁜 카페에 앉아 푸른 바다 맛집에 황홀해지는 곳입니다. ‘봄날’ 카페의 하얀 커피잔이 상징물처럼 서 있는 곳입니다. 2011년 애월 한담 해변에서 가장 먼저 생긴 한담 해변의 1호 카페랍니다. 미리 음료를 선주문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굳이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그 옆 작은 골목 올레로 접어들어도 운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도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닮아갑니다.

MBC 드라마 ‘맨도롱또똣’의 촬영지이기도 하답니다. 하지만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비경보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닷길 돌담 사이 1.2㎞의 바닷길 산책로를 그냥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곳입니다.

저녁놀을 보면 무슨 생각이 나나요. 혹시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처럼 ‘Tomorrow is another day(내일은 또다른 태양이 뜰거야)’가 떠오르진 않나요.

절망적이었던 12월은 이제 곧 떠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태양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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