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학
  • 전략가·파티 중독자… 조금 특별한 공주들

    전략가·파티 중독자… 조금 특별한 공주들

    무서운 공주들/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 지음/노지양 옮김/이봄/484쪽/2만 2000원 공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동화와 왕자님이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 착하고 아리따운 공주의 삶은 “그 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예쁜 그림이 있는 동화책이 심어 준 공주에 대한 판타지는 디즈니사의 만화영화로 더욱 공고해진다. 현실 속의 공주도 그런 삶을 살았을까. 적어도 ‘무서운 공주들’에 등장하는 공주들은 아니다. 특이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 특출한 감각을 지닌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는 실제 역사 속의 공주들 중에서 지나칠 정도로 비범한 삶을 살았던 동서고금의 공주 혹은 왕비가 된 여인 서른 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퍼진 여자아이들의 공주 열병에 대한 우려가 자신이 책을 쓴 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공주들이 여성의 미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 수준을 형성하고 소녀들의 개성을 제한하며 자존감마저 해칠 수 있다는 페미니즘적 관점을 수용해 동화는 현실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제목부터 과격한 책에서 저자가 소환한 공주들은 전사, 왕위 찬탈자, 전략가, 생존자, 파티 중독자, 난잡한 여
  • 현실을 담은 문화, 역사에 눈뜬 비평

    현실을 담은 문화, 역사에 눈뜬 비평

    프레드릭 제임슨(81)은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자본주의, 후기 마르크스주의적 문화이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화비평가다. 그는 이미 35년 전 문학·문화의 비평에 있어 작품을 예단하고 재단하는 경향을 경계했다. 이는 개별 작품마다 갖고 있는 해석의 범주에 비평가들이 정직한 응답을 하기 이전에 미리 판단의 잣대를 설정하는 ‘윤리적 비평’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작가와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평단의 전체 흐름에 쏠리는 몰비판적 비평 등에 대한 계언이었다.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꼽히는 ‘정치적 무의식’(민음사 펴냄)이 완역됐다. 이 책은 ‘사회적인 상징적 행위로서의 서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제임슨에게 가장 중요한 잣대는 역사와 역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변증법적 사유다. 그는 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집단·역사의 차원에서 모순적인 현실과 역사를 살아내고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밝혀내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그는 ‘비평에 담긴 가장 순진한 형식적 독해들조차도 그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기능에 있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특정 관점을 유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 위기의 문단, 새 문학 전문지들의 도전

    위기의 문단, 새 문학 전문지들의 도전

    문학 전문지가 잇달아 창간됐다. ‘문학동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등 대형 출판사의 계간지와 차별되는 구성과 목소리로 제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악스트’(왼쪽·Axt·은행나무)는 소설 전문 격월 문예서평지를 표방하며 첫선을 보였다. 악스트는 독일어로 ‘도끼’를 의미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소설 ‘변신’ 서문에 쓴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문장에서 따왔다. 소설가가 중심이 돼 꾸려간다는 게 특징이다. 소설가 배수아·백가흠·정용준 등이 초대 편집위원을 맡았다. 이들은 “소설 시장의 위기와 침체가 어느덧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는 지금, 소설 독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깨고자 창간했다”고 말했다. 2900원이라는 가격도 파격적이다. 창간호에선 소설가 천명관의 인터뷰가 표지 기사를 장식했다. 이기호·김이설·최정화 작가가 장편을 연재하고, 전경린·배수아·김경욱 작가가 단편을 실었다. 소설가 박솔뫼·정지돈·김금희·박민정, 번역가 조재룡·정영목·노승영·임옥희, 시인 함성호 등의 서평이 수록됐다. 문학 종합 계간지 ‘문학과 행동’(오른쪽)도 여름 창간호가 나왔다. 국민 연극 ‘만선’(滿船)의 작가 천승세가 상임
  • 나도 질러볼까, 전질

    나도 질러볼까, 전질

    출판계가 7~8월 여름 휴가철 독서 시장 대목을 맞아 방대한 분량의 전질을 잇달아 출간하고 있어 불황 타개의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여름 한철 반짝 특수를 노리고 새로운 작품 발굴보다는 작품성과 대중성이 검증된 작가의 작품들만 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출간된 전질들은 청소년과 직장인이 즐겨 읽는 문학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강희대제’(전 12권·더봄), ‘인간시장’(전 10권·해냄), ‘동주 열국지’(전 5권·글항아리), 청소년판 ‘아리랑’(전 12권·해냄) 등이다. ‘강희대제’는 중국 작가 얼웨허(二月河)의 대하소설로, 15년 만에 다시 번역·출간됐다. ‘제왕삼부곡’(강희·옹정·건륭황제) 중 가장 먼저 선보인 작품으로, 중국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의 일생과 업적을 담았다. 김덕문 더봄 대표는 “15년 전 첫 출간 때 번역이 어설퍼 늘 후회로 남았다. 2년간 중국 관련 서적 200~300권을 읽고 재번역을 추진했다”며 “200년 전 100만 만주족으로 1억 5000 한족을 지배한 강희·옹정·건륭의 리더십과 통치 철학을 알아야 오늘의 중국을 깊이 있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옹정황제’(전10권), 건륭황제(전18권
  • 한·중·일 시인 15명 ‘몬순’으로 뭉쳤다

    한·중·일 시인 15명 ‘몬순’으로 뭉쳤다

    동아시아 최초로 시인 국제동인 시문집(앤솔러지) ‘몬순’(MONSOON·문예중앙)이 나왔다. 한국·중국·일본 시인 15명이 국제동인 ‘몬순’을 결성하고 낸 첫 번째 창간호다. 한국은 고형렬·김기택·나희덕·심보선·진은영 시인, 중국은 린망·양커·진샤오징·쑤리밍·선웨이 시인, 일본은 시바타 산키치·스즈키 히사오·나무라 요시아키·사소 겐이치·나카무라 준 시인이 참여했다. 시인들의 신작시와 산문을 담아 서울·베이징·도쿄에서 각 나라 언어로 번역돼 동시 출간됐다. ‘몬순’은 고형렬 시인 주도로 결성됐다. 2000년 잡지 ‘시평’을 창간해 2013년까지 300여명의 아시아 시인을 국내에 소개한 그는 그동안 쌓은 추억과 인맥을 동원해 각국 작가를 모았다. 고 시인은 “한·중·일 3국은 지정학적 동시성을 갖고 함께 독자적 언어와 역사를 창조해 왔다. 동북아 역사가 오래 각축하고 갈등해 왔지만 언어를 다루는 시인들이 모여 새 비전을 내다보고, 민족주의적인 자국 문학 안에 있기보단 다른 나라 입장에서 서로를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중국 시인 린망은 “세 나라에서 동시 출판된 동인지가 시공을 초월한 힘을 갖고 다른 나라 시인들의 영혼을 서로 연
  • 비틀어 보는 음악의 역사

    비틀어 보는 음악의 역사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지음/돌베개/360쪽/1만 5000원 일상에서 음악은 공기와 같은 존재다. 예술이 인간사를 반영하는 속성을 지닌다면 음악이야말로 당대의 정치,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 책은 음악에 미치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 영향에 주목하면서 기존의 선입견들에 대한 전복과 반전의 사유를 시도한다. 저자는 재즈와 로큰롤을 단순히 새로운 음악적 장르의 출현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이 겪어야 했던 질곡의 역사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즈와 로큰롤은 노예의 후손인 하층계급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독자적인 문화를 한 번도 갖지 못했던 10대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적 권력을 장악한 혁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로큰롤 혁명이 일었다면 1960년대 말 가난한 대한민국의 대학 캠퍼스에는 통기타 혁명이 최초의 청년 문화를 일군다. 통기타 음악은 순식간에 주류 음악을 점령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 청년 문화를 문화적 적대자로 규정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밖에도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위대함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 또한 전복과 반전의 사유를 거쳐 재해석된다. 또한 ‘사의 찬미’ 신
  • [어린이 책꽂이]

    [어린이 책꽂이]

    푸른 사자 와니니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창비 펴냄) 쓸모없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쫓겨난 한 살배기 어린 사자 ‘와니니’가 초원을 떠돌며 겪는 일들을 그린 장편 동화. 와니니가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에서 여러 모험을 하며 어엿한 암사자가 돼 가는 과정을 사실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렸다. 216쪽. 9800원. 아버지를 구해야 해 (하은경 지음, 홍선주 그림, 별숲 펴냄) 방화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진짜 범인을 찾아 나선 소년 금동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추리동화. 조선시대가 시대적 배경이다. 탐관오리와 악덕 고리대금업자들을 혼내 주는 의적 보라매의 활약도 흥미진진하다. 212쪽. 1만 1500원.
  • [책꽂이]

    [책꽂이]

    미감 (이주은 지음, 예경 펴냄) 미술사가와 셰프가 우리 마음속 감정과 관련된 12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그림과 요리를 이야기한다. 자유, 절제, 슬로라이프, 버팀, 나이듦, 자아 발견, 가벼움, 추억 등과 연관된 동서양의 미술 작품과 이에 맞는 요리를 소개한다. 304쪽. 1만 6500원. 가능성의 중심 (인디고연구소 기획, 궁리 펴냄) ‘공동선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인디고연구소의 인문학 프로젝트 세 번째 책.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해온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74)과의 대담을 통해 자유와 책임, 세계 시민의 윤리, 공동선을 위한 한계와 도전 등의 문제를 짚는다. 278쪽. 1만 8000원.
  • 창조, 마법 아닌 노동의 다른 이름

    창조, 마법 아닌 노동의 다른 이름

    창조의 탄생/케빈 애슈턴 지음/이은경 옮김/북라이프/416쪽/1만 6800원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아름다운 음악들을 단지 통찰력으로 악보도 없이 작곡했다며 그의 천재성을 신화처럼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모차르트 전기작가 오토 얀은 모차르트가 타고난 재능과 일생에 걸친 연습 덕분에 빠르고 능숙하게 작곡할 수 있었을 뿐 작곡 과정은 노동 그 자체였음을 증명해 냈다. 비단 모차르트뿐 아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나 발명가, 세상을 바꾼 혁신가들이 눈부신 영감으로 가득하고, 누구도 갖지 못할 독창적인 시각과 미래를 읽는 천재성을 지닌 사람일 것으로 생각한다. ‘창조의 탄생’은 이런 신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21세기에 우리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사물인터넷’을 창시한 정보기술(IT) 분야의 거두 케빈 애슈턴이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책을 통해 ‘창조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세상에는 새로운 것의 탄생을 둘러싼 신화가 늘 존재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창조를 할 수 있고 성공한 창조자라면 누구나 극적인 통찰력
  • [이주일의 어린이 책] 무서워하지 마, 겁먹은 사자일 뿐이란다

    [이주일의 어린이 책] 무서워하지 마, 겁먹은 사자일 뿐이란다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 아드리앵 파를랑주 글·그림/박선주 옮김/정글짐북스/33쪽/1만 2000원 어느 저녁 사자가 방을 비운 사이 호기심 많은 소년이 사자의 방에 들어갔다. 조금 뒤 밖에서 소리가 났다. 소년은 사자가 돌아온 줄 알고 재빨리 침대 밑으로 숨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건 또 다른 소년이었다. 두 번째 소년이 들어온 뒤 얼마 안 있어 또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두 번째 소년은 사자가 돌아온 줄 알고 천장의 등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방에 들어온 건 소녀였다. 또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 소녀도 사자인 줄로 알고 양탄자 아래에 숨었다. 이번에 방에 들어온 건 개였다. 개가 방을 한 바퀴 막 돌았을 때 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개는 사자가 돌아온 줄 알고 부리나케 거울 뒤로 숨었다. 이번에 들어온 건 한 무리의 새들이었다. 문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자 새들은 커튼 뒤로 숨었다. 이번엔 정말로 사자가 돌아왔다. 사자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소년, 소녀, 새, 개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한편 사자는 자기 방이 낯설게 느껴졌다. 거울 위치가 조금 달라졌고, 발 아래 양탄자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사자는 덜컥
  • ‘정서적 카멜레온’ 인간의 감정전염 관찰기

    ‘정서적 카멜레온’ 인간의 감정전염 관찰기

    타인의 영향력/마이클 본드 지음/문희경 옮김/어크로스/384쪽/1만 7000원 우리는 스스로 삶을 통제하고, 의지대로 삶을 이끌어 간다고 여기지만 실은 정반대다. 무엇을 먹을지, 주말에 어디로 갈지, 어떻게 입을지, 심지어 심리 상태까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주위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신간 ‘타인의 영향력’은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타인의 영향을 받는지를 설명한다. 영국왕립아카데미 수석연구원을 지낸 저자는 역사적 사건, 사회적 이슈와 심리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접목하고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이 얼마나 철저하게 사회적 동물인지를 흥미롭게 풀어 간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소집단 시대에 살고 있다. 한 개인은 인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타인과 촘촘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다. 그 관계망 속에서 타인과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대형 사건·사고를 접하고 집단적으로 애도하게 되는 감정 전염은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다. 인간은 주변 환경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을 모방한다. 모방은 원초적이고 선천적인 반응이며 인간의 모든
  • 서양판 손자병법 속 승부전략

    서양판 손자병법 속 승부전략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진우 지음/흐름출판/368쪽/1만 8500원 흔히 동양에 ‘손자병법’이 있다면 서양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있다고 말한다. 전략, 전술을 입에 올릴 때 일반인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교과서격 전서들로, ‘손자병법’이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고전이라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근대 나폴레옹 시대에 쓰인 작품이다. 두 책은 널리 알려지고 회자되는 명작이지만 의외로 베스트셀러 고전 반열엔 끼지 못한다고 한다. ‘손자병법’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 탓에, ‘전쟁론’은 방대하고 난해한 텍스트 탓에 읽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니체의 이성과 권력에 천착해 온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이 ‘전쟁론’을 직접 번역해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다. 잘 알려졌듯이 ‘전쟁론’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전략이다. 전략의 이론과 사상을 제시한 최초의 책이면서 냉철하고 체계적이며 포괄적인 분석 때문에 여전히 지금도 가장 많이 연구 인용되는 전략의 독보적인 고전이다. 저자는 그 ‘전쟁론’ 가운데 모든 전쟁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개념과 전략을 콕 집어 다시 구성해 눈길을 끈다. ‘전쟁은 단순히 정치를 다른 수단으로 계
  • 수치 경쟁에 폐허가 된 상아탑

    수치 경쟁에 폐허가 된 상아탑

    폐허의 대학/빌 레딩스 지음/윤지관·김영희 옮김/책과함께/368쪽/2만 2000원 오랜 시간 대학은 상아탑(象牙塔)으로 통했다. 애초 성서에서 미인의 희고 매끄러운 목줄기를 상아탑으로 비유했듯 대학은 아름다우면서도 범접하기 어려운 지적, 정신적 활동을 펼치는 공간이었다. 물론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슬픈 우스갯소리로 이름지어진 ‘우골탑(牛骨塔)’은 농민들이 자식 교육을 시키기 위해 농사 밑천인 소를 팔아서라도 대학 공부시켜야 했던 현실을 반영했다. 12세기 르네상스 시절 유럽에서 대학이 첫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대학은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서 연구하는 학자를 양성하는 목적이 주를 이뤘다. 건물과 공간의 존재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교수조합, 학생조합, 교수와 학생 공동의 연구자 조합 등 지식인 집단이 바로 대학이었다. 공간을 여기저기 빌렸고, 학생들은 바닥에 앉아 토론하며 공부했다. 19세기 들어서는 민족국가의 발달에 따라 민족문화를 지키고 재생산하는 원천으로서 기능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대학의 모습들은 더이상 초기의 형태와 같지 않다. 자본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학사회 운영의 지배질서가 됐다. 나아가 더이상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아하 세상을 바꾸는 통찰의 순간들 (윌리엄 어빈 지음, 전대호 옮김, 까치 펴냄) 무의식과 욕망 관계를 분석한 ‘욕망의 발견’과 스토아 철학자의 말을 통해 행복찾기를 귀띔한 ‘직언’으로 국내에서도 친숙한 저자의 신작. 무의식이 아이디어를 발생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파고들었다. 위대한 인물들은 세상을 완전히 뒤바꾼 통찰의 순간을 경험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일상의 작은 통찰은 물론, 세계 진로를 바꾼 통찰까지 종교, 도덕, 과학, 수학, 예술의 다섯 영역에서 일어난 통찰의 순간을 소개한다. 신경과학뿐만 아니라 개인적, 사회적 영역들까지도 훑어냈다. 아이디어란 독자적인 생명을 갖고 있어서 추구하지 않을 때 느닷없이 찾아오다가 막상 찾으려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해 왜 뛰어난 지능과 실력, 성실함을 겸비한 사람들이 좌절을 견뎌야 하는 지, 그 좌절의 시간 뒤 아무 관련성 없는 것들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일 때 순간적으로 통찰이 오는 과정을 설명한다. 351쪽. 1만 8000원. 캣 센스 (존 브래드쇼 지음, 한유선 옮김, 글항아리 펴냄) 고양이는 개보다 개체 수가 무려 3배나 많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도시 환
  • 파괴왕 ‘Mr. 바이러스’ 오늘도 해외 여행 중

    파괴왕 ‘Mr. 바이러스’ 오늘도 해외 여행 중

    바이러스 대습격/앤드루 니키포룩 지음/이희수 옮김/알마/448쪽/1만 8000원 조류독감, 광우병, 구제역, 사스, 신종플루, 그리고 최근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 잊을 만하면 생기고 유행하는 바이러스 질병들은 이제 변종 확대와 함께 유행 속도도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대처 불능’의 대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예측까지 서슴지 않고 내놓는다. 바이러스 질병들은 과연 제어할 수 없는 존재일까. 바이러스 질병들은 인류 문명과 함께 생겨나고 번창해 왔다. 문제는 질병들이 지독해지고 내성이 강해진다는 데 있다. ‘바이러스 대습격’은 갈수록 독해지는 바이러스 질병을 ‘생물학적 침입자’로 간주해 그 역사와 전망을 함께 다룬 생물학적 유행병 보고서이다. 최근 지구촌에 광범위하면서 마치 비행기 폭격 같은 형태로 인간의 생명과 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신종 바이러스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현장을 낱낱이 보여준다. 책 속에 들어 있는 지난 10년간 통계만 보더라도 바이러스 질병의 창궐은 놀라운 양상이다. 네덜란드는 군대를 동원해 3000만 마리의 닭을 살처분했고 대만에서는 돼지콜레라가 휩쓸고 지나간 뒤 국민총생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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