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과금 꼬박꼬박 낸 싱글맘, 150만원짜리 차 있는 아픈 아빠[비수급 빈곤 리포트-1회]

[단독]공과금 꼬박꼬박 낸 싱글맘, 150만원짜리 차 있는 아픈 아빠[비수급 빈곤 리포트-1회]

입력 2023-07-02 17:55
수정 2023-07-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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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난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

갓 돌 지난 쌍둥이 키우는 싱글맘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에 한숨

이혼 소송 중… 법적 배우자 존재
아기 키우기 위해 수도·전기 필요
친구에게 돈 빌려 공과금 냈는데
위기가구 대상 제외 오히려 발목

대한민국 기초생활수급자는 지난 5월 기준 250만 9099명(시설 포함)이다. 총인구 대비 수급자 비율을 뜻하는 수급률은 4%대다. 문제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기초생활보장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非)수급 빈곤층’이 73만명(2018년 기준)에 이른다는 점이다. 비수급 빈곤층 규모는 3년마다 실시하는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 연구’를 통해 추산하는데, 2021년 통계는 이르면 다음달에 나온다. 정부는 2017년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통해 비수급 빈곤층이 2020년 33만명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올 3월 경기복지재단이 발표한 경기도민의 비수급 빈곤층 규모를 보면 기초생활수급자가 28만 4100가구이며, 그와 별개로 비수급 빈곤층은 10만 4600가구라 수급자 규모의 약 37%나 된다. 위기가구 발굴, 긴급복지 확대 등으로 복지망이 촘촘해지고 예산도 빠르게 늘어났지만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신문이 제보와 정부 부처·지방자치단체·사회복지재단 등 117곳의 도움을 통해 직접 발로 뛰며 찾은 전국의 비수급 빈곤층의 삶은 암담하고 처참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기초생활수급제 자격 조건 탓에 제도권 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전국의 ‘또 다른 세 모녀’를 확인했다. 이들의 사연과 함께 발목을 잡은 수급 배제 이유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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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버린 아들을 대신해 손자를 키우는 권순자(가명) 할머니가 건강보험료 독촉 고지서를 보여 주고 있다. 궁핍한 형편에 건강보험료가 계속 밀리면서 지금까지 쌓인 체납금이 1200만원을 웃돈다. 김소희 기자
가족을 버린 아들을 대신해 손자를 키우는 권순자(가명) 할머니가 건강보험료 독촉 고지서를 보여 주고 있다. 궁핍한 형편에 건강보험료가 계속 밀리면서 지금까지 쌓인 체납금이 1200만원을 웃돈다. 김소희 기자
“기초생활수급 대상도 안 되는데 굶어서라도 꼬박꼬박 낸 공과금 때문에 위기가구도 못 된다고요?”

지난 4월 4일 오후 1시. 갓 돌이 지난 쌍둥이 딸을 안고 경기도 한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이다현(38·가명)씨가 울먹였다. 마이너스 통장에 찍힌 금액이 1000만원일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기초생활수급도, 위기가구 지원 대상도 될 수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수급 신청조차 어려운 건 다현씨에게 부양의무자인 배우자가 법적으로 아직 존재해서다. 남편과는 지난해 6월부터 따로 살며 홀로 아이들을 키운다. 이혼 소송까지 준비해야 하는 탓에 머리가 아프지만 이보다 더 다현씨를 아프게 하는 건 모니터를 보던 복지센터 직원의 무심한 말이었다.

“부모님에게 도와 달라고 해보세요.”

학대 가정에서 자라 부모와 연락을 거의 끊다시피 한 다현씨는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직원에게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쩔 수 없다’였다.

위기가구로 다른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도 물었지만 답은 같았다. 공과금을 체납할 정도가 아니라서 위기가구에 해당하는 징후가 없단 이유에서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위기가구 발굴은 단전·단수·전기료 체납·가구주 사망·실업급여 수급 등 39가지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뤄진다. 그동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주변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상하수도와 전기 요금 등을 내왔던 게 되레 독이 됐다. 다현씨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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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집인데 전기가 끊기면 어떻게 하라고요….”

전세 대출로 한 달에 나가는 돈(이자)만 40만원. 쌍둥이 딸 주안이와 주은이를 위한 분유와 기저귀값을 더하면 60만원이 훌쩍 넘는다. 배가 고프다며 칭얼대는 아이들이 눈에 밟힌 다현씨가 눈물만 삼켰다. 터벅터벅 복지센터를 나와 어린이집 교사 면접 장소로 향했다. 2021년을 끝으로 일을 그만둔 다현씨가 어렵게 구한 자리다. 휴대전화를 들고 아이를 잠시 돌봐 주기로 한 친구에게 연락했다.

“미안해…2시간만 더 부탁해.”

다현씨는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고 오후 5시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혼자 쌍둥이 딸을 키우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다 보니 체중이 10㎏가량 빠져 옷이 헐렁하다 못해 나풀거린다.

2년 전 피트니스센터를 차린 남편은 코로나19 여파로 사업에 실패한 후 집을 나갔다. 이후 양육권을 둘러싼 길고 긴 이혼 소송이 시작됐다. 그나마 이혼하면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가능성이 조금은 커진다. 실제 기초생활수급 가구 중 노인, 장애인 가구뿐 아니라 모자 가구도 해마다 증가세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 5월 기준 기초생활수급자 중 모자 가구는 42만 9977명으로, 전체의 17.0%다. 하지만 이혼이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다현씨 집 우편함엔 남편 이름이 적힌 제3금융권의 독촉장만 쌓이고 있다.

“사정은 알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게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불합격’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다현씨를 보고 쌍둥이 딸이 배가 고픈 듯 울기 시작했다. 바닥이 보이는 분유통을 박박 긁었다. 다현씨는 바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단순 보조’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야근이 있을 수도 있어서 아이들이 그렇게 어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거절만 당한 다현씨는 체념한 듯 토로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안 되고, 위기가구 지원도 못 받고, 일자리도 못 구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제가 나간 사이 애들이 어떻게 될까 무서운 생각만 들어요.”
특별기획취재팀

(사회부)백민경·강병철·김헌주·홍인기·김지예·강윤혁·김주연·김소희·김중래·박상연·곽진웅 (전국부)임태환·명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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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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