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패자 부활 창구 ‘서민금융진흥원’ 출범
연 18%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던 개인사업자 김모씨. 자영업자의 경우 서민금융대출 상품 중 하나인 미소금융으로 싼 이자(최고 연 4.5%)의 돈을 빌릴 수 있다기에 미소금융재단을 찾아갔다. 기존에 빌렸던 3000만원을 일부 갚아 이자를 줄여보려던 요량이었다. 하지만 미소금융은 ‘운영·창업자금용’으로만 대출이 가능했다.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 주는 ‘바꿔드림론’이 있다고 해 신청하려 했더니만 이번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 찾아가 국민행복기금을 신청해야 한단다. 김씨는 “하루 장사를 포기하고 어렵게 발걸음 한 것인데 금융 서비스를 한곳에서 받기가 이렇게 어렵다”고 토로했다.23일 서민금융진흥원개소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작성한 행복나무 응원메시지.
23일 출범한 서민금융진흥원은 이런 고충들을 해결하려고 정부가 만든 기관이다. 미소금융, 국민행복기금, 햇살론 등 여러 서민금융상품을 한곳에 모아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려·조선시대 빈민구호기관인 ‘의창’을 현대판으로 부활시킨 셈이다. 당초 정부는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까지 통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채무조정과 대출 기능 간에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국회 반대로 별도 법인으로 그대로 두기로 했다. 대신 신복위와 진흥원 기능을 한 장소에서 동시 수행할 수 있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통합센터)를 전국에 운영한다. 서민들이 찾아가야 하는 곳은 이 통합센터다. 서민금융진흥원의 ‘손발’ 역할을 하는 통합센터는 누가 이용 가능하고 어떤 서비스를 갖추고 있는지 짚어 봤다.
●낮은 금리의 신용대출로 갈아탔다
택배업을 하는 40대 A씨는 은행권에서 신용등급 7등급으로 분류됐다.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을 찾았지만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낙담하고 있던 차에 저축은행 대출모집인의 권유로 집 근처 저축은행에서 연 25%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25% 중 약 5% 포인트가 대출모집인에게 떼주는 수수료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한 푼이 아쉬운 처지에 이자비용이 아까웠지만 여기가 아니면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았다.
그러다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가면 본인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통합센터를 찾아갔다. 생각보다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도 많았고 대출모집 수수료가 포함되지 않아 금리도 훨씬 낮았다. 그는 오랜 상담 끝에 상대적으로 낮은 10%대 중·후반의 금리로 저축은행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수료 없이 파산신청도 해준다
50대 퇴직자 B씨는 과도한 사업 확장으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도저히 대출금을 갚기가 어려워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려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지하철에서 ‘개인회생·파산지원’이라는 광고를 봤다. 밥값도 없는 형편에 변호사 선임 비용이 200만원이란다. 파산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하는 처지에 좌절감만 깊어졌다.
그러다 통합센터를 알게 됐다. 별도의 변호사 선임 없이 법률 지원을 해 주면서 법원 개인파산을 할 수 있게 연계지원까지 해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통합센터 관계자는 “A씨의 채무가 너무 많아 단순히 금융기관에서 채무를 줄여 주는 사적 채무조정으로는 힘들고 공적 채무조정인 법원 개인파산을 하는 것이 좋겠다”며 실비 수준으로 법원 파산신청 관련 서류 작성을 도왔다.
●착실히 돈 갚았더니 은행 대출도 가능해졌다
사기를 당해 퇴직금을 다 잃고 동네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려던 C씨. 창업자금으로 미소금융재단에서 2000만원을 빌린 뒤 약 4년에 걸쳐 차곡차곡 갚아 왔다. 테이블을 좀더 늘리려고 운영자금 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찾았지만 신용등급이 낮다며 퇴짜를 맞았다. 다시 미소금융을 찾아가 10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언제쯤 저 높은 은행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다 정부가 ‘성실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합센터를 방문하니 미소금융 상품을 성실히 갚은 실적이 인정돼 신용등급이 8→6등급으로 올랐다. 그 후 중금리 대출상품인 은행권의 징검다리론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이마저도 착실히 갚았더니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C씨는 “이제는 은행에서 떳떳하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을 만큼 신용을 쌓았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자활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지금까지 서민 정책금융상품은 금전적 지원에만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단순히 대출만 저렴하게 해 주는 것으로는 취약계층이 자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자영업자를 위해 경영 컨설팅을 해 주고 소비 전략 등도 상담해 준다. 이를 위해 기관별로 단편적으로 이뤄지던 서민금융 관련 상담·취업·교육 기능을 일원화시켰다.
정순호 통합지원센터장은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업체계를 마련해 실질적이고 내실 있는 일자리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2016-09-24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