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 슈퍼리치… 재벌…넘치는 엘리트, 나라를 흔들다

대졸자… 슈퍼리치… 재벌…넘치는 엘리트, 나라를 흔들다

이은주 기자
이은주 기자
입력 2025-03-21 00:09
수정 2025-03-2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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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피터 터친 지음/유강은 옮김
생각의 힘/424쪽/2만 3800원

모든 국가는 반복적인 불안 겪어
엘리트 과잉으로 내부 경쟁 격화
실패자의 불만 커지면 국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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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와 사회는 반복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린다. 많은 사회가 내전, 혁명이나 심각한 수준의 혼란을 겪으며 명멸하고 소수의 사회만이 대격변 없이 완만하게 혼돈에서 벗어난다. 작금의 한국 사회 역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심판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미국 코네티컷대 진화인류학자인 피터 터친은 나폴레옹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약 300건의 위기 사례를 통해 사회가 위기에 빠져드는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 분석한다.이 책에서는 더 많은 사회 권력을 가진 이들을 엘리트로 규정한다. 저자는 “엘리트 과잉 생산, 대중의 궁핍화, 국가 재정과 정당성의 약화, 지정학적 요인 등 네 가지 구조적인 요인이 국가의 위기를 가져온다”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엘리트 과잉 생산”이라고 말한다.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 및 엘리트 진입에 실패한 자들의 불만으로 표출되는 엘리트의 과잉 생산이 결국 위기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규모가 큰 나라의 경우도 지정학적 요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엘리트 과잉 생산이라면서 미국을 예로 든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1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슈퍼리치’가 급증했고 2018년과 2022년에는 부유한 선거 출마 지망자의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저자는 “미국에서 트럼프가 이끄는 반엘리트 그룹이 엘리트를 갈아치우는 혁명을 진행 중”이라고 주장한다. 슈퍼리치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대중의 궁핍화 때문에 재선에 성공했지만 엘리트 내부의 충돌로 인해 미국 사회를 지탱하던 사회 계약이 약화하고 국민적 협력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1년 벨로베즈 협정으로 소련을 해체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문화가 유사하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동 중인 ‘아노크라시’ 국가라는 점에서 같았다. 하지만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번영과 안정을 누리게 된 것은 지배 집단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이후 국유 기업의 대규모 민영화로 인해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들의 과잉 생산과 그들 간의 충돌로 인해 거듭된 국가 붕괴가 이어졌다. 하지만 벨라루스는 국가가 주요 산업의 대기업 소유권을 보유하면서 올리가르히의 등장을 막아 내부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생태학자로 연구자 경력을 시작한 저자는 1만 년에 걸친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중요한 양상들이 존재한다는 ‘역사 동역학’을 내세운다. 그가 내놓은 위기 사례 분석의 결론은 전반적으로 암울하다. 전쟁, 혁명, 감염병 등으로 인구가 크게 감소하는 한편 3분의2 정도의 사례에서는 엘리트 계층이 평민 계층으로 하향하는 대규모 이동이 관찰됐다.

한국 사회 역시 1980년대 이후 대학 졸업자를 양산하며 엘리트를 과잉 생산한 지 40년이 넘었고 2010년대 이후로는 불평등이 악화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대졸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지만 고급 학위를 가진 젊은 인재들을 소화할 만한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난관에 부딪혔다”면서 “이 같은 불안정의 추동 요인은 이미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국의 시민과 정치 엘리트들이 불안정한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2025-03-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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