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 익스프레스/조진호 지음/위즈덤하우스/398쪽/2만 2000원
처음으로 주기율표를 배우던 날을 떠올려 보자. 중학교 교실, 화학 교과서 표지 안쪽에만 붙어 있던 주기율표가 수업에 등장하는 순간 한숨이 쏟아진다. “주기율표만 외우면 화학은 다 해결된다.” 거듭 강조하시던 선생님과, “수헬리베붕탄질산…” 하며 따라 외우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아톰 익스프레스’는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너무나 익숙한 이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정확히는 명제가 아닌 질문이다. 정말로 원자가 실재할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말이 한때는 진실로 여겨지지 않던 때가 있었다. 저자는 원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오랜 분투를 한 편의 만화로 그려냈다. 자연의 근본물질을 고민했던 최초의 자연철학자들로부터 물질을 바꾸어 금을 만들고자 한 연금술사들, 근대 화학자들과 물리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화학과 물리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에서 만나는 강렬한 발견의 순간들에 시선이 사로잡힌다.
때로 여행자들은 관광지가 아닌 길 위에서도 의미를 찾는다. 원자의 존재를 발견해 나가는 여정 역시 그렇다. ‘아톰 익스프레스’의 조명은 놀라운 방정식이 정립되는 순간만을 비추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고민하고 의심한다. 원자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과학자들은 결코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일까? 감각된 사실을 어떻게 진실로 믿을 수 있을까? 원자의 존재에 관한 추적은 결국 과학철학의 질문들로 이어진다. 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이 과연 궁극의 실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 질문들을 거쳐 이 긴 여정의 끝에 무사히 도달한다면, 그때는 뺨을 스치는 겨울 공기와 입안에 남은 커피의 끝맛을 다시금 음미해 보자. 우리가 언제나 감각해 왔지만 그 실재를 생각하지는 못했던,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들의 잔여감이다.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2018-12-21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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