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말 청초 문학·연극·출판인 ‘이어’ 미용·패션·음식·웰빙 등 책 한 권에 “머리 감은 수건으로 얼굴 닦지마라 잠은 백 가지 병 치료하는 신령한 약” 지금도 참고할 만한 삶의 지혜 가득
쾌락의 정원/이어 지음/김의정 옮김/글항아리/792쪽/3만 8000원이어는 봄, 가을, 겨울엔 일을 하고 가혹한 더위를 몰고 오는 여름에는 잘 쉬어야 지극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림은 중국 원나라의 화가인 유관도가 피서를 즐기고 있는 남성을 묘사한 ‘소하도’.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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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잡학적 관심은 문학, 연극, 출판인 등 ‘종합예술인’으로 산 그의 이력이 한몫한 듯싶다. 지금으로 치면 19금 호색소설 ‘육포단’(肉蒲團)도 그의 작품이다.
극단을 운영했던 이어는 수십명의 식솔을 건사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금을 융통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눈동냥 귀동냥했으니 넓고 얕은 지식이 풍부해진 건 당연지사. 일생의 경험을 총괄한 이 야심작도 그래서 탄생했다.
전체 8장으로 구성된 ‘한정우기’는 희곡 이론을 제외한 나머지 6장에 미용·패션(성용부), 주거 공간(거실부), 집안 소품(기완부), 음식(음찬부), 식물 재배(종식부), 웰빙(이양부) 등 현대에도 관심 가질 만한 주제들을 할애했다.
이어는 피부가 하얀 여인은 어떤 옷을 입어도 돋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림은 중국 원나라 순제의 숙비인 과소아의 초상. 피부가 투명할 정도로 희고 은은한 붉은빛이 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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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는 머릿기름 때문에 화장이 안 받으니 머리를 감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지 말고, 여러 가지 옷을 받쳐 입을 수 있는 활용도 높은 검은색 재킷을 하나쯤 갖추라고 조언한다. 지금으로 치면 웬만한 ‘연예인 코디네이터’ 뺨칠 정도다.
신발을 신을 때 땅 색깔과 같은 색깔을 신으면 신발의 멋을 살릴 수 없다는 깨알 잔소리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을 그저 남성이 감상하는 미적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시각은 고루하고 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이어는 잠이야말로 비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고 뼈와 근육을 굳건하게 하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림은 북송의 도가 학자인 진단이 잠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 도교를 수련한 진단은 한 번 잠들면 몇 달씩 깨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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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 치여 건강관리에 소홀한 현대인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도 눈에 띈다. 저자는 잠이 보약이라고 풀었다.
매화 문양의 휘장을 단 침대. 잠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어는 침상을 조강지처에 비교할 만큼 중요한 사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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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탐닉하면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는 지적에서부터 육식보다는 채식을 하고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먹으라고 한 건 온갖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식습관을 나무라는 듯하다. 시대적 배경이 다른 탓에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건축, 가구, 의복, 음식, 장신구, 성생활 등 전 영역에서 자신만의 ‘소확행’을 추구했던 예술가의 시선은 무척 흥미롭다. 번역서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 말미에 한자 원문도 실려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8-05-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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