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50편에 삽화 넣어 재출간…이야기 구조로 웹툰 감상하는 듯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 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원태연(앞쪽) 작가의 1992년 베스트셀러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다시 주목받으면서 그림을 입혀 재출간됐다. 뒤쪽은 원 작가의 시집에 일러스트를 그린 강호면 작가.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오글거린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썼던 시집은 다시 못 보겠더라고요. 그런데 강호면 작가가 함께한 이번 시집은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30대인 강 작가는 “고등학생 때 원 작가의 시집을 즐겨 읽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원 작가가 시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대로 스토리를 펼쳐 보라고 했다”면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장면이라든가, 익선동에 있는 거북이 슈퍼 등 나름의 감성을 그림에 담았다”고 했다.
26년 전 나온 시집의 감성이 지금도 통한다는 점에서 이번 책은 원 작가에게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네이버의 데이터랩에 따르면 2012년에 나왔던 개정판은 40대 여성이 가장 많이 샀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새 옷으로 갈아입은 책은 2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으로 집계됐다. 강 작가는 이와 관련, “그림을 넣긴 했지만, 책은 시 때문에 구입하는 측면이 크다”면서 “감성으로만 따진다면 현재 다른 작가들의 시보다 10대와 20대에게 잘 맞는다. 원 작가의 감수성은 재조명받을 만하다”고 했다. 원 작가는 “20대 초반에 쓴 시를 돌이켜 보니 순수하고 깨끗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시가 누군가를 속이려 썼거나 대단한 기교를 부렸으면 지금 1020세대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원 작가는 21살 때 무작정 시를 쓰고 싶어 썼고, 시집을 내겠다며 출판사를 돌았다. 그러다 속된 말로 ‘대박’이 터졌다. 두 번째 책 역시 크게 성공했다. 원 작가는 “당시 쏟아지는 관심에 ‘이게 아닌데’ 싶어 군대를 갔다”고 설명했다. 제대 후 시집을 2권 더 내고, 30살 때 마지막 시집 ‘안녕’을 쓰고 시와 작별했다. 그는 “초반의 인기를 좇아 답습하고 복습하는 느낌으로 시를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부터 시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원 작가는 제대 이후 가수 김현철의 ‘왜그래’ 작사를 시작으로 신승훈의 ‘나비효과’, 손담비의 ‘투명인간’, 백지영의 ‘그 여자’, 태연의 ‘쉿’ 등 히트곡 수십 편의 가사를 썼다. 앞서 2009년엔 권상우·이보영 주연의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자신의 본업인 작사에 충실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아이돌과 작업하는 작사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작사가”라며 “노래가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상당하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17살 고등학생 아들이 내 노래를 듣는 기쁨이 쏠쏠한 만큼 앞으로 좋은 작사를 더 하고 싶다”고 밝게 웃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04-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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