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였을까… 내게 신은

누구였을까… 내게 신은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8-04-15 17:22
수정 2018-04-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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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시집 ‘…잠시 신이었던’

유희경(38) 시인의 새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문학과지성사)은 제목부터 곱씹게 된다. 나에게 잠시 신이었던 것은 무엇일까. 이때 신은 초월적 존재를 일컫는 것일까. 한때 믿고 따랐던 동경의 대상일까. 그것도 아니면 보잘것없지만 나를 지탱하게 한 작은 기쁨일까. 곧바로 되묻게 되기 때문이다. 시집의 제목이자 1부 앞머리에 놓인 시에서 ‘신’의 정체를 헤아려 볼 수 있다. 바로 ‘당신’이라는 2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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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시인
유희경 시인
시인은 빛이 부재하는 순간, 가시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어둠 속에서 ‘당신’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당신이 구체적인 성별과 이름을 가지게 될 때 내가 매만질 수 있는 당신의 의미는 줄어든다는 것. 오히려 어둠 속에서 희미해진 당신을 자유롭게 어루만질 때 온전히 그 존재에 가닿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어떤 인칭이 나타날 때 그 순간을 어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어둠을 모래에 비유할 수 있다면 어떤 인칭은 눈빛부터 얼굴 손 무릎의 순서로 작은 것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내며 드러나 내 앞에 서는 것인데 (중략) 인칭이 성별과 이름을 갖게 될 때에 나는 또 어둠이 어떻게 얼마나 밀려났는지를 계산해보며 그들이 내는 소리를 그 인칭의 무게로 생각한다. 당신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당신을 듣는다.’(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유 시인은 “우리 삶을 변화하게 하는 것들은 어쩌면 작은 것들이 아닌가 싶다”며 “그래서 이 시집에서도 작지만 막대한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과정도 미세하게 쪼개다 보면 그사이에 많은 것들이 존재하겠죠. 그 모든 작은 것들은 저의 바깥에 있죠.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인의 말대로 때때로 신은 그 이름을 벗고 호명 가능한 대상을 넘어선다. 부르는 순간 생겨나는 당신은 꽃말처럼 몇 자 적어 보내고 싶었던 ‘그’일 수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그를 추억하는 참담한 ‘봄밤’일 수도, 바람이 부는 날 ‘시를 읽는 시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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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해설을 쓴 김나영 문학평론가가 “흔히 ‘당신’이라고도 달리 부를 수 있는 대상인 그는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친구이거나 그저 한두 번 스쳐 지나간 타인일 수도 있다. 때로 당신은 길가 꽃나무이거나 꽃나무 위로 날아가는 새이거나 바람 소리일 수도 있다. 요컨대 신은 화자가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고 진술할 수 있을 만한 모든 대상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 이유다.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니, 우리는/묻지 않았지 그의 얼굴은 비밀이었으니/그가 주머니에 감추어 둔 것도/언젠가 그가 날려버렸던 푸른 저녁도/우리는 묻지 않았네 거기/생이 재잘대는 소리를 듣자고/손을 펼쳤을 때 보이던 들판과 구름들/흘러가고/여린 풀입들 발돋움하던/그러나 여전히 그것도 아니었지’(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것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8-04-1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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