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태국인들이 ‘세기의 장례식’ 치르는 까닭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태국인들이 ‘세기의 장례식’ 치르는 까닭

입력 2017-10-27 17:42
수정 2017-10-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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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미폰 국왕 장례식으로 본 태국의 역사

2016년 10월 13일 세상을 떠난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전임 국왕의 장례식이 지난 25일 시작돼 29일까지 진행된다. 1년의 애도 기간을 거쳐 치러지는 차크리 왕조 ‘라마 9세’의 장례식에는 덴마크 왕세자, 영국과 일본의 왕자 등 전 세계 왕족들이 운집해 나름 화제다. 이 장례식이 세계적인 화제인 이유는 또 있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재현하기 위한 장례식장이 마련됐는데, 물경 338억원을 들여 9층 황금탑(큰 사진)을 세웠다. 국왕의 시신은 황금탑 내부에서 화장을 거행하는데, 외신으로 전해진 탑의 모습은 말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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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동남아 여행이 일상화되면서 친숙한 나라가 됐지만 여전히 낯설다. 당장 1년의 애도 기간과 ‘세기의 장례식’이라 불릴 만큼 화려한 의식이 거행되는 이유조차 모른다. 푸미폰 국왕, 길게는 차크리 왕조가 세워진 배경을 알아야 오늘의 태국을 이해할 수 있는데, 태국 역사를 알려 주는 책은 실상 거의 없다. 찾고 찾아 발견한 책은 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 조흥국 교수의 ‘근대 태국의 형성’이다. 저자는 태국의 근대가 차크리 왕조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 14세기 중반부터 태국 중부를 중심으로 건재했던 아유타야 왕조가 1767년 톤부리 왕조에 의해 전복됐지만, 톤부리 왕조는 15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1782년 태국 일대를 통일한 것이 방콕을 중심으로 일어난 차크리 왕조 라마 1세다. 책은 18세기 후반 차크리 왕조의 시작부터 1930년대 라마 7세, 즉 푸미폰 국왕의 삼촌 시기까지 왕들의 재위 기간 동안 사회상의 변화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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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미폰 국왕이 오랜 시간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일이나 사후 세기의 장례식의 주인공이 된 데는 라마 왕조 전체의 공이 크다. 라마 1세는 미얀마, 캄보디아 등 주변 국가의 무력 침략을 막고 왕조를 세웠고 쇄국정책을 유지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라마 2세와 3세는 유럽 등과의 과감한 교류 정책을 펼치며 국력을 키웠다. 라마 4세는 문호를 완전히 개방하며 근대화의 시작을 알렸고, 5세는 이를 대폭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서양의 침입을 막고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이 없는 나라를 만들었다. 라마 6세는 근대화 개혁을 이끌면서도 ‘타이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라마 7세는 태국이 입헌군주제를 시행하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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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전임 왕들이 확립한 나름의 긍정적 결과들이 푸미폰 국왕에 대한 애도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푸미폰 국왕이 후광만 입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땅에 떨어진 왕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70년 동안 부단히 노력했다. 쿠데타가 셀 수 없이 일어나는 와중에 침묵과 행동을 병행하며 중재에 나섰다. 오랫동안 군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민주화의 바람을 넣기도 했다. 왕실의 자금을 낙후 지역 발전을 위해 내놓기도 했다. 푸미폰 국왕에 대한 태국 국민의 깊은 애도는 과거의 영광과 그의 일관된 행적이 낳은 산물이다. 혹시 태국을 우리보다 못한 후진국 정도로, 혹은 3박4일 여행지 정도로 생각했다면 말 그대로 오산이다. 태국은 지금도 변화, 발전하며 새로운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혹시 우리만 제자리에 안주하며 낡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화려한 황금탑 사진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2017-10-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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