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서 삶의 의지를 봤어요”

“거짓말에서 삶의 의지를 봤어요”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10-18 23:16
수정 2017-10-19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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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친밀한 이방인’ 낸 소설가 정한아

“늘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에게 마음이 끌렸어요. 그들의 허무맹랑한 꿈이나 욕망이 내 것 같았죠. 소설은 언제나 그런 착각 속에서 쓰게 돼요.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거짓말이고 소설이라면, 거기서 우리는 희망을 얻기도 하고 새로운 각성에 이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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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작가
정한아 작가
첫 장편 ‘달과 바다’로 거짓이 진실보다 반짝일 수 있음을 일깨워 줬던 정한아(35) 작가가 거짓으로 삶을 지어 올리고 부수는 인물로 생동하는 서사를 만들어 냈다. ‘리틀 시카고’ 이후 5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장편 ‘친밀한 이방인’(문학동네)이다. ‘이방인’이라는 명사와 ‘친밀한’이라는 형용사 사이의 아이러니가 솔깃한 제목과 얼굴을 감춘 채 다면체의 가면을 쓴 인물의 표지는 작품의 기이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한다.

‘나’는 7년이나 소설을 쓰지 못한 소설가. 대학교수로 자리 잡은 남편이 유능해질수록 무능해지는 스스로에게 지쳐 가던 그는 신문에서 자신이 10년 전에 쓴 소설과 함께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란 광고를 발견한다. 육 개월 전 실종된 남편을 찾고 있다는 여자 ‘진’은 자신의 남편이 광고 속 소설을 쓴 작가로 행세했다며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온’ 남편 이유미의 삶을 ‘나’에게 던져 놓는다.

소설은 거짓말을 동력으로 세 남자의 아내,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산 이유미의 삶을 타인들의 기억으로 촘촘히 복기한다. “누구나 인간 관계를 맺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필연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꿈과 욕망이 정직한 방법으로 실현될 수 없을 때 부도덕하고 비효율적일지라도 거짓으로 이뤄 내는 사람들에겐 삶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 생명력이 보였고요. 거짓말이 세상의 벽에 부딪혔을 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나 기지, 생존 전략으로 보이면서 이를 지지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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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행적을 추적하는 ‘나’ 역시 감춰진 거짓으로 ‘정상성’을 기신기신 유지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작가는 잃을 것 없는 이유미와 잃을 것 많은 ‘나’의 삶을 대조하면서 어떤 위치이든 여성의 삶은 ‘거짓의 서사’가 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이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을 있는 대로 드러내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남성 중심 사회의 틀에 맞추지 않으면 도태되고 폐기되죠. 저 역시 글을 쓰고 학교에 머물 때는 여성에게 사회가 생래적으로 주는 페널티를 느끼지 못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이를 실감했어요. 아내와 엄마로서 ‘진짜 나’와 ‘내보여야 하는 나’ 사이에서 큰 딜레마를 느끼면서 나 역시 방어막을 치고 거짓말을 하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었죠.”

청량하고 생기 넘치던 청춘의 서사가 생의 비의를 알아버렸을 때의 깊이와 어둠을 가지게 된 것 그 때문일 터다. 예상치 못한 풍경으로 내닫는 미스터리와 반전의 서사에서 “매번 작품을 쓸 때마다 유려한 거짓말쟁이가 돼 간다고 느낀다”는 작가의 고백이 더없는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10-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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