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평등… 좋은 삶 선택할 기회 구조를 만들자

허울뿐인 평등… 좋은 삶 선택할 기회 구조를 만들자

함혜리 기자
입력 2016-06-03 17:32
수정 2016-06-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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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사회 조지프 피시킨 지음/유강은 옮김/문예출판사/480쪽/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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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신분에 따라 살아야 하는 전근대사회와 달리 근대사회에서는 이론상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어떤 기회든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오히려 불평등이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게 교차되는 특징을 보인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병목사회’의 저자 조지프 피시킨은 “기회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으로 야기되는 병목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회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그것의 균등한 분배를 고민하기보다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병목’이란 사람들이 건너편에 열려 있는 삶의 많은 경로를 좇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좁은 지점을 가리킨다. 병목현상은 모든 사회의 기회 구조에 존재한다.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공정한 기회균등’의 거대한 이론적 틀을 축조한 이래 기회균등은 평등주의의 중심을 차지하는 강력한 개념이 됐다. 현대 정치 이론, 법률, 공공정책에서 광범위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평등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적극적 차별 조치는 인종이나 성별 등 타고난 출신 배경 때문에 기회를 제약당하는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운이 좋은 유능한 소수’에게 기회를 주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 구조를 통과하지 못하는 소수자 대다수에게는 허울뿐인 평등이다.

책은 기회균등의 문제점에 대해 전반부를 할애한 뒤 어떻게 기회 다원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논증한다. 어떤 병목을 개선하는 것이 다른 병목보다 더 중요한지, 누구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더 제약돼 있는지, 또 그들에게 특별히 높은 우선권을 줘야 하는지가 논점이다.

우리 삶에서 기회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소망과 목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피시킨이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가로막는 병목이다. 그는 “단일한 기회 구조가 불가피하게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기회 구조를 다원화하고 확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좋은 삶, 행복한 삶의 개념 자체가 다양하고 풍부해야 하며 이런 삶에 이르는 길도 여러 갈래가 있어 누구나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병목을 헤집고 나아갈 필요가 없도록 또는 병목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경로가 열릴 수 있도록 기회를 재구조화하는 방법을 찾을 때 그 결과는 제로섬이 아니라 포지티브섬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6-06-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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