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롯데의 면세점 왕국이 무너진다는 것은/주현진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롯데의 면세점 왕국이 무너진다는 것은/주현진 산업부장

주현진 기자
주현진 기자
입력 2021-06-17 17:18
수정 2021-06-18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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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진 경제부장
주현진 경제부장
“홍콩으로 쇼핑 가는 외국인 관광객을 돌려세울 만한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명품을 유치하라.”

재계 5위 롯데그룹의 면세점 왕국은 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이 같은 한마디 지시로 시작했다.

그는 일생을 통해 호텔(1973년), 백화점(1979년), 면세점(1980년), 놀이공원(1989년), 타워(2017년) 등 관광산업 인프라 구축으로 ‘관광입국’의 토대를 닦았다. 그리고 일찌감치 면세 사업의 핵심으로 고객들이 원하는 타깃 브랜드 확보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나라가 올림픽 개최(1988년)도 못 하던 시기에 명품의 대명사가 된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유치를 이뤄 냈다. 시대를 앞선 통찰력과 남다른 열정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은 1980년 롯데백화점 본점 건물 8층에 1490㎡(약 450평)의 공간을 빌려 ‘호텔롯데 면세점’으로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개점과 함께 신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명품 유치 팀을 꾸리고, 1984년 루이비통 입점을 성사시킨 것을 계기로 에르메스(1985년)와 샤넬(1986년)까지 끌어들였다. 면세점 업계 최초로 명품 대표 3인방인 ‘에루샤’ 진용을 갖춘 것이다. 다른 명품 브랜드들까지 속속 롯데를 찾으면서 글로벌 면세 업계 선두로 치고 나갔다.

명품의 힘은 컸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단체 관광이 금지된 2017년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으로부터 핀 포인트 제재(롯데그룹이 운영하는 서비스 전면 이용 금지)까지 당했지만, ‘세계 최대 면세 매장’이란 메리트 덕에 성장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명동본점 1개 점포 기준 2011년 매출 1조원 고지에 올라선 데 이어 2015년 2조원, 2016년 3조원에 이어 2018년 4조원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이 발상의 전환으로 자국 명품 관광객 수요를 자국의 제주도 격인 하이난섬으로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면세점 손님의 80%는 명품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이 차지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던 지난해 중국이 하이난섬 내 내국인 1인당 쇼핑 면세 한도를 기존의 3배 이상인 연간 10만 위안(약 1738만원)까지 완화하는 등 해외로 유출되던 차이나 머니를 자국으로 흡수하는 파격 정책을 대거 출시했다.

이 같은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기존 4위에 머물던 중국 면세점(중국면세품그룹)은 지난해 전년 대비 9.3% 성장한 9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처음으로 전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반면 롯데면세점은 매출(약 6조 5000억원)이 37.1% 하락하며 ‘세계 1위 원년’의 꿈이 좌절됐다.

중국은 2023년까지 세계 최대 면세점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글로벌 명품을 자국으로 최대한 흡수할 기세다. 루이비통이 이달 초 돌연 국내 시내면세점 철수를 결정했다고 통보하면서 그 명분으로 공항면세점 집중 계획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일이다. 중국은 2022년까지 공항면세점 6곳을 새로 연다. 시내면세점 철수 정책이 확정된다면 국내 시내면세점 7곳에 주던 루이비통 물량은 모두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다른 명품 브랜드들이 돈 냄새를 좇는 루이비통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신 명예회장이 명품과 면세점을 관광입국의 핵심 고리로 봤듯 면세점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코로나 이후 국내 관광산업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값비싼 명품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면서 뒷짐만 질 일이 아니다. 신 명예회장이 1년 넘게 한산한 면세점과 텅 빈 명동 거리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jhj@seoul.co.kr
2021-06-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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