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종이라 불리던 나, 런던에서 울보 됐다”

“독종이라 불리던 나, 런던에서 울보 됐다”

입력 2012-08-06 00:00
수정 2012-08-0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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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대표팀 정훈 감독

올림픽 두달 전 태릉선수촌. 한국이 어떻게 ‘유도 강국’이 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훈(43) 남자대표팀 감독은 “원래 잘하는 게 어디 있느냐. 세계를 통틀어 훈련을 가장 많이 한다.”며 웃었다. 웃통을 벗은 선수들은 천장까지 밧줄을 타고 오르내렸고, 90도로 물구나무를 선 채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하루 네 번 촘촘한 스케줄을 짜 혹독하게 굴렸다. 비가 오는 날도, 회식 다음 날도 예외가 없었다. 4년 동안 일요일 말고는 새벽운동을 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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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감독은 늘 선수와 함께했다. 조준호가 판정 번복 끝에 동메달을 딴 순간에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정훈 감독은 늘 선수와 함께했다. 조준호가 판정 번복 끝에 동메달을 딴 순간에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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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의 부상 당한 몸도 직접 챙겼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조준호의 부상 당한 몸도 직접 챙겼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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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이 금메달을 딴 김재범(왼쪽), 송대남(오른쪽)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정 감독이 금메달을 딴 김재범(왼쪽), 송대남(오른쪽)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정 감독은 “사람이 할 수 없는 훈련량을 군말 없이 소화해 줬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욕을 많이 먹었다.”고 회상했다.

정 감독은 아시안게임 2연패(1990·1994년)·세계선수권 우승(1993년) 등 71㎏급을 주름잡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준결승에서 ‘무슨 세리머니를 하지?’라고 딴생각을 하다 종료 5초 전 역전패했다. 그는 “한국에선 금메달 아니면 의미가 없더라. 그래서 더 독하게 다그쳤다.”고 했다.

런던에서 힘든 훈련의 결실을 맺었다. 81㎏급 김재범(마사회)과 90㎏급 송대남(남양주시청)이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유도의 금메달 둘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24년 만이다. 조준호(마사회)는 동메달을 걸었다. 8강에서 멈춘 최광현(국군체육부대)을 제외하면 최중량급 김성민(수원시청)까지 모두 준결승에 오르며 실력을 뽐냈다. 금메달 두 개의 목표를 채운 건 물론, 조준호의 판정 번복·왕기춘(포항시청)의 부상 패배·황희태(수원시청)의 붕대투혼 등 체급마다 ‘찡한 드라마’를 써냈다. 그러나 정 감독은 “정말 아까운 대회다. 모두 메달을 걸고 갈 수 있었는데.”라고 속상해했다.

유도 경기가 모두 끝난 지난 3일 회식에서 정 감독은 선수들을 일일이 붙잡고 끌어안았다. “최선을 다했느냐고만 물어봤다. 7명 모두 후회 없는 시합을 했다더라. ‘그럼 됐다’고 했다.” 최선을 다했기에, 메달은 하늘이 주는 걸 알기에 감독과 선수 모두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었다.

정 감독은 퇴물(?)로 취급받던 선수를 화려하게 재기시킨 것으로도 주목받았다. 도복을 벗었던 송대남을 2012런던올림픽챔피언으로, 격투기로 전향하려던 황희태를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조련했다.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법하다. 정 감독은 “경험 많은 선수들이 경기를 잘한다. ‘구관이 명관’이란 생각으로 기회를 줬는데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둘에게 특히 고맙다.”고 했다.

TV로 지켜본 시청자들이 정 감독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선수들에겐 쉽게 말을 걸기 힘든 ‘호랑이 감독’이다. 정 감독은 “애들은 날 독종이라고 한다. 일부러 웃지도 않고 엄하게 대했다.”고 했다. 그래도 런던에서는 표정 관리를 못했다. “올림픽 때는 감정 조절이 안 되더라.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고맙고 대견해서 자꾸 복받치고 주책맞게 눈물도 쏟아졌다.”고 했다.

정 감독은 5일 런던을 떠난다. 4년 내내 일주일에 딱 한 번 집을 찾은 ‘0점 남편, 0점 아빠’가 가족들 품으로 돌아간다. 정 감독은 “아내가 경기를 보고 울었다더라. 맛있는 찌개와 고기반찬을 해 놓겠다는데 빨리 만나고 싶다.”고 웃었다.

런던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2012-08-0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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