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고 벗겨져도,손연재 사상 첫 결선

더듬고 벗겨져도,손연재 사상 첫 결선

입력 2012-08-11 00:00
수정 2012-08-11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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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이 벗겨지고 곤봉을 더듬는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국민 요정’다운 연기였다.

10일 런던 웸블리아레나에서 끝난 런던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예선 이틀째. 손연재(18·세종고)는 예선 첫날인 지난 9일 후프와 볼에서 각각 28.075점, 27.825점을 받아 중간합계 55.900점으로 24명 중 4위로 연기에 나섰다. 이날은 취약 종목인 곤봉으로 시작했다. 순탄치 않았다. 시작부터 곤봉을 더듬고 중간에 신발까지 벗겨졌다(작은 사진). 규정된 연기시간(1분30초)도 1초 초과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 가슴 졸이며 지켜본 점수는 26.350. 세 종목 중간합계는 82.250점으로 7위로 곤두박질했다.

손연재가 10일 런던 웸블리아레나에서 열린 리듬체조 개인종합 예선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리본 연기를 펼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손연재가 10일 런던 웸블리아레나에서 열린 리듬체조 개인종합 예선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리본 연기를 펼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운명의 4번째 종목은 리본이었다. 22번째로 등장한 손연재는 푸치니의 ‘나비부인’ 아리아에 맞춰 우아한 손짓과 현란한 몸놀림으로 붉은색 리본을 풀어냈다. 이번엔 만족스러웠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손연재는 28.050의 높은 점수를 받자 결선행을 직감한 듯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4개 종목 합계 110.300. 6위에 오른 손연재는 10위까지 주어지는 결선 티켓을 손에 쥐었다. 손연재는 “너무 행복하다. 내일 결선에서는 메달보다도 후회 없이 내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올림픽 리듬체조 결선에 오른 건 손연재가 처음이다. 지난 1988년 서울대회에서 홍성희와 김인화가 나섰으나 각각 29위와 31위. 4년 뒤 바르셀로나에서 윤병희와 김유경도 실패했다. 베이징대회에선 신수지(세종대)가 12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등록선수 150명에 불과한 한국 리듬체조의 현주소였다. 하지만 손연재는 수년 전 박태환·김연아가 척박한 토양에서 꽃을 피웠던 것처럼, 기적의 첫 걸음을 뗐다. 그의 눈부신 성장속도를 감안하면 4년 뒤 ‘리듬체조의 김연아’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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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가 리듬체조를 처음 접한 건 다섯 살 때. 타고난 유연성과 길쭉한 팔·다리, 요정 같은 얼굴은 물론 근성까지 갖춘 손연재는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냈다. 세종초 6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다. 2009년 슬로베니아 월드컵(주니어 부문)이 운명을 바꿨다. 개인종합 등 3관왕에 오른 손연재를 눈여겨본 리듬체조계의 ‘대모’ 비너르 러시아 협회장에게 눈도장을 찍힌 것. 그의 주선으로 지난해 1월부터 예브게니아 카나예바, 다리아 드미트리예바 등 러시아 대표팀과 함께 노보고르스크 센터에서 하루 10시간의 지옥훈련을 했다. 덕분에 지난 4월 러시아 펜자 월드컵에서는 개인종합 4위에 오를 만큼 ‘폭풍성장’을 했다.

훈련보다 가혹한 건 체중 조절이었다. 166㎝의 키에 45㎏을 유지하기 위해 샐러드와 시리얼, 요구르트만 먹었다. 리듬체조 선수의 체지방(5%)은 보통 여성(20%)의 4분의1 수준. 점프와 회전이 많아 몸이 무거우면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지난달 영국에 도착한 뒤로는 세 끼 모두 요구르트, 과일, 수프로 배를 채웠다. 가끔 먹던 닭 가슴살도 끊었다. 그러나 완벽한 자기 관리 덕에 예선 이틀 동안 절정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런던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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