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지 기자의 런던eye] 폐회식까지 기다리라고? 그만 집에서 쉬게 해줘요

[조은지 기자의 런던eye] 폐회식까지 기다리라고? 그만 집에서 쉬게 해줘요

입력 2012-08-07 00:00
수정 2012-08-07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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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리스트들의 발이 묶였다. 한국에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다. 대한체육회가 13일 런던올림픽 폐회식까지 있다가 함께 돌아가자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예정은 이렇지 않았다. 종목별로 일정에 맞춰 출입국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그러나 올림픽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바뀌었다. “메달리스트는 폐회식까지 보고 함께 귀국하자.”고.

메달을 딴 선수들은 억지로 올림픽선수촌에 남아 다른 종목 응원을 다닌다. 6일 경기장에서 마주친 선수들은 한결같이 “한국 가고 싶어 죽겠어요.”라고 했다. 다소 뜻밖의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런던에 며칠 더 머무르면서 관광도 하고, 다른 경기도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지도. 그러나 선수들은 전부 고개를 젓는다. “가족들한테 축하받고 싶다.”, “선수촌의 긴장감이 부담스럽다.”, “질려서 빵을 못 먹겠다.”는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얼른 귀국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심지어 당장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유도 김재범·송대남·조준호도 런던에 남았다.

대한체육회는 6일 “한국선수단 임원과 메달리스트들이 오는 9일 6·25 참전용사비가 있는 세인트폴 성당을 참배한다.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준 우방 영국에 감사를 표시한다. 그 이후 본인 자유 의사에 따라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여론 등쌀에 밀려 ‘급조’한 프로그램이다.

물론 ‘좋은 게 좋은 식’으로 생각하면 며칠 더 있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분통 터지는 건 런던에 머물러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것. 그저 인천공항 들어갈 때 목에 메달 걸고 ‘폼 잡는 일’을 위해 남아 있을 뿐이다. 선수단 귀국 행사라면 한국에 있다가 몇 시간 전에 합류해도 될 일인데 말이다.

너무 촌스럽다. 대한체육회는 4년 전에도 귀국 금지 문제로 입방아에 올랐다. 베이징올림픽에 나섰던 350여명의 대한건아(!)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개선장군처럼 귀국했다. 버스를 나눠 타고 도심으로 이동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광장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공중파로 생중계됐다. 이튿날엔 청와대에서 밥도 먹었다. 정연주 KBS 사장 해임, 재벌들의 광복절 특별사면, 여권발 부패 등 뜨거운 이슈들이 ‘올림픽 특수’에 휩쓸려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지난 4년 동안 올림픽만 보고 땀을 흘린 선수들이다. 이들이 바라는 건 의미 없는 런던 관광이 아니다.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입에 맞는 음식을 즐기며 늘어지게 자고 싶은 것뿐이다. 선수들 덕분에 열대야를 견뎌냈으면 그걸로 됐다. 공항 나갈 때 ‘모양’ 갖추는 게 대수는 아니잖나. 지친 선수들을 이제 제발 좀 놓아주자.

zone4@seoul.co.kr

2012-08-07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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