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가 밝힌 하노이 회담 파국 원인
“15개월 핵 중지했는데 완화 조치 왜 없나”결의 준수 따른 유엔 제재 강화·해제 언급
“美정치에 휘둘려… 회담 진정성 없었다”
성과보다 코언 폭로 등 역풍 고려에 불만
“트럼프는 좋지만 폼페이오·볼턴이 고약”
강경파 일괄타결 선긋고 트럼프 결단 압박
최선희(가운데)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평양에서 외신 기자, 외국 외교관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 부상은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와 핵·미사일 시험 유예를 계속 유지할지 등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만간 결정 내린다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① “핵·미사일 중단… 대북제재 해제 돼야”
최 부상의 모두발언에 따르면,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모라토리엄) 자체가 대북 제재를 완화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모라토리엄은 단지 북미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전제조건에 그친다고 보는 미국의 시각과 큰 차이가 있다.
최 부상은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해제를 요구했던 민생경제·인민생활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지난 15개월 동안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러한 제재들이 계속 남아있어야 할 하등의 명분이 없다”고 했다.
이어 “그에 대해서는 유엔 안보리가 보다 명백히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핵시험이나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걸고 나온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들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결의들을 준수하는 정도에 따라 제재를 강화, 수정, 보류, 해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문구가 명백히 새겨져 있다”고 했다. 또 “이번 회담에서 내가 느낀 것은 미국의 계산법이 참으로 이상하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우리가 지난 15개월 동안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은 많이 하면서도 그에 상응하게 해당한 유엔 제재들을 해제하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인 2017년 12월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79호 28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준수 여부에 비추어 필요에 따라 조치들을 강화, 수정, 중단 또는 해제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다만 2379호 2항은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모든 활동을 중단(모라토리엄)하는 것 외에도 모든 핵무기·대량살상무기·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포기해야 한다고 명기됐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단절적으로 제재가 결의됐으니 실험을 안 하면 제재를 하나씩 해제해야 한다는 논리”라면서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도발을 연속된 과정으로 보고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자신의 논리로 국제사회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② “미국 국내 정치에 휘둘리는 비핵화 협상”
최 부상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직접적 원인으로 미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들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국 언론들이 분석한 원인과 같다. 최 부상은 “미국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집착하면서 회담에 진정성을 가지고 임하지 않았다”며 “미국 측은 조미(북미) 관계 개선이라든가 그 밖의 다른 6·12 공동성명 조항들의 이행에는 일체 관심이 없고 오직 우리와의 협상 그 자체와 그를 통한 결과를 저들의 정치적으로 만드는 데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애당초 미국 측은 6·12 공동성명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없이 저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르는 계산법을 가지고 이번 수뇌회담에 나왔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라고 했다.
최 부상이 지적한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란 트럼프 대통령이 2차 회담 당시 직면했던 국내 정치적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기간에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해 자신의 개인 비리와 추문을 폭로하면서 정치적 궁지에 몰렸었다. 아울러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 과반을 확보한 야당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대화 노선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면서 미국 정·관계에 북한 비핵화 회의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이 2차 정상회담 합의로 인한 대외적 성과보다 국내 정치적 역풍을 더 고려했다는 것이다.
③ “트럼프는 괜찮은데, 실무진이 문제”
최 부상은 또 다른 결렬 이유로 ‘폼페이오와 볼턴의 훼방’을 꼽았다. 특히 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볼턴 보좌관이 잇따라 언론 인터뷰를 하며 북한에게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폐기를 골자로 하는 일괄타결식 빅딜을 압박하는 데 대해 비난하며 2차 회담 이후 북미 간 긴장의 책임을 볼턴에게 돌리기도 했다. 최 부상은 “제2차 수뇌회담 이후 미국 고위 관리들 속에서는 아주 고약한 발언들이 연발되고 있다”며 “특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은 대화 상대방인 우리에 대해 말을 가려 하지 못하고 자기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마구 내뱉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 식으로 우리 최고지도부와 우리 인민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 그 후과가 어떠할 것인지, 과연 감당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우려스럽다”면서 “명백히 하건대 지금과 같은 미국의 강도적 립장은 사태를 분명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며 볼턴식의 일괄타결은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압박을 많이 받았고, 국내 정치적 변수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내부적으로 정리한 것 같다”며 “이런 차원에서 최 부상이 폼페이오·볼턴은 비난하면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궁합은 훌륭하다고 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19-03-2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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