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단독 면담 배석은 처음…남북·북미 외교로 보폭 넓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 정권의 최대 핵심 현안인 북미 외교에까지 깊숙하게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함께 배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캡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7일 김정은 위원장이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면담한 자리에 통역을 제외하면 북측 인사로는 유일하게 함께 배석했다.
김 제1부부장이 북미 간 현안을 논의하는 협상에 직접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그가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면담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북미협상의 총책이라고 할 수 있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 대한 미국 측의 ‘거부감’을 배려한 차원일 수도 있지만, 그의 지위와 역할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김 제1부부장은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북한 측 특사로 방남해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하면서 현재 한반도 정세의 물꼬를 텄다. 그는 방남 후 평양에 돌아가 남쪽의 입장 등을 정확하게 김 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다.
또 남쪽의 특사 방북이나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도맡아 챙기면서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서 남북관계를 중점으로 핵심 역할을 해왔다.
이런 김 제1부부장이 폼페이오 국무장관 면담에 배석함에 따라 앞으로 김정은 정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할 북미협상과 외교의 고비마다 역시 중차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김 제1부부장이 비핵화와 북미 신뢰관계 구축 등 북미 간 현안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관장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이라고 해도 면담 자리 배석은 불가능하다.
외교소식통은 북미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김여정 제1부부장과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와 북미 간 주고받기 등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정은 위원장에게 솔직히 ‘노(no)’를 말할 수 있고 조언할 수 있는 인물은 혈육인 김여정 제1부부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직급이 높다고 해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를 위해 ‘어떤 양보를 해야 한다’는 식의 진취적이고 한발 앞서가는 방안을 내놓기 어려운 구조다. 지도자의 의도에 맞춘다며 자칫 앞서갈 경우 어떤 추궁이나 좋지 않은 결과가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북미협상의 북측 라인은 김영철 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김정일 정권의 북미 협상에 다져진 인물들로, 여전히 과거 방식에 얽매여 있는 탓에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방해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북한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영구폐기 참관과 영변핵시설 영구 폐기 등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명시한 것도 이들 실무자의 의견이 배제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최수헌 전 외무성 부상이 1993년 내부적으로 북한의 화학무기금지협약(CWC) 가입을 주장했다가 좌천된 사례에서 보듯 북한 간부들은 이른바 충성과 자기 보신에만 급급해 보수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체제 안정을 보장하면서 핵을 포기해야 하는, 북미 협상의 중대한 고비마다 중요한 결정은 오로지 김정은 위원장의 몫이고, 그 고독한 결단의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믿고 의논할 수 있는 건 김여정 제1부부장뿐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외교소식통들은 김 제1부부장의 오른팔 역할이 단순히 혈육이라는 점을 넘어 그가 갖춘 능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약하고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철이 형임에도 국사에 중용되지 못한 채 주변으로 떠돌고 있는 사실에 비교된다.
외교소식통은 “스위스에서 오빠와 함께 선진문물을 익힌 김여정 제1부부장은 매우 똑똑한 데다 부지런하고 국정운영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국사 전반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며 ‘30대 젊은 오누이의 케미’에 주목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