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차원 대화 의향 확인…‘비핵화 의제화’ 놓고 입장차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이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춰 ‘운전대’를 다시금 고쳐잡고 있다.여기에는 ‘평창 외교전’을 거치며 어렵게 불붙은 대화의 동력을 제대로 살려나가지 못하면 상황이 이전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일단 문 대통령으로서는 평창발 외교적 ‘해빙무드’를 토대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라는 두 개의 바퀴를 ‘선순환적으로’ 굴려나가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위기의 핵심축인 북미간에 최소한의 대화 분위기라도 조성돼야 남북대화를 의미있게 추동할 수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확고한 인식으로 보인다. 바꿔 말해 북미간 대화의 시작을 남북 정상회담 추진의 실질적 ‘입구’로 삼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개·폐회식을 무대로 한 ‘최고위급 외교전’을 통해 북미 양국으로부터 대화 의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지난 8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만남이 불발됐지만, 그 과정에서 북미간의 기류에 모종의 변곡점이 생성되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사상 최대의 압박’을 공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평창 개회식을 계기로 한 북미간 고위급 접촉을 사전 승인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최측근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평창으로 내려보내 북미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처럼 정상 차원의 ‘의향 교환’으로 북미 대화를 위한 기초적 여건이 마련됐지만 속단은 일러보인다. 최대 이슈인 핵문제를 대화의 의제로 삼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적어도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 또는 진정성을 표시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백악관은 25일(현지시간) “우리는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북한의 오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길을 따르는 첫걸음을 의미하는지 볼 것”이라며 “우리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은 전날 북미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비핵화 의제화 여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입장을 표시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미 고위급대표단에 포함됐던 북한 외무성 내 대미외교 담당인 최강일 부국장과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 물밑에서 예비 실무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이나, 양측이 당장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화의 ‘의제’는 결국 대화의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라는 점에서 양측이 설령 대화 의지가 있더라도 기싸움이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대화의 조건을 둘러싼 북미간의 평행선 대치가 이어질 경우 문 대통령이 어떻게 ‘중재외교’를 구사하느냐에 따라 의미있는 돌파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북미대화 용의를 밝힌 북한 대표단에 비핵화 대화의 중요성을 직접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핵동결을 입구로 하고 폐기를 출구로 삼는 ‘2단계 해법’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북한 대표단은 직접적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경청’한 것으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귀환보고 때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의지가 전달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는 북한의 정확한 의중을 시험하는 ‘탐색적 대화’에 나설 것을 적극 설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문 대통령의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는 한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미국으로 보내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상대로 향후 한미공조 방향에 대한 조율에 나서도록 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해온 대로 ‘최대한의 압박’(maximum pressure)과 동시에 ‘관여’(engagement)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미대화에 응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미를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 있어 중국의 ‘역할’도 중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류옌둥 중국 부총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동시 개선을 통한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시키고 중국이 적극 지지해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이 과거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의 지위로서 북한이 비핵화 대화의 장에 나서도록 또 다른 중재역할을 맡아줄 것을 종용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 같은 외교적 노력에 힘입어 북미대화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본격적인 사전정지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접촉 추이를 봐가며 김여정 특사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이르면 3월 대북 고위급 특사를 파견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한반도 정세의 기본 축이 대화국면으로 급속히 이동할 것으로 점쳐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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