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황혼 자금’ 3조 삼킨 은행 성과급·승진 잔치 벌였다

[단독] ‘황혼 자금’ 3조 삼킨 은행 성과급·승진 잔치 벌였다

입력 2020-10-04 22:38
수정 2020-10-05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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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자금 착취 리포트-늙은 지갑을 탐하다<1>

고령층 사모펀드·파생상품 피해 급증
올 기초연금 뺀 노인 복지 예산과 비슷
사모펀드액 45%가 60세 이상에 팔려
사모펀드 전수 조사 중… 손실 커질 듯
올해 90세인 유모씨는 프라이빗뱅커(PB)의 권유로 팝펀딩 사모펀드에 가입했다가 투자금 5억원을 잃을 위기에 처한 피해자다. 지난달 24일 지팡이에 의지해 한국투자증권 분당PB센터 앞 피해자 집회 현장에 참여한 유씨는 실버타운 보증금 인상분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올해 90세인 유모씨는 프라이빗뱅커(PB)의 권유로 팝펀딩 사모펀드에 가입했다가 투자금 5억원을 잃을 위기에 처한 피해자다. 지난달 24일 지팡이에 의지해 한국투자증권 분당PB센터 앞 피해자 집회 현장에 참여한 유씨는 실버타운 보증금 인상분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퇴직 후 노인들은 ‘정글 같은 세상’에 내몰린다. 살아갈 날이 수십년인데 일자리를 다시 구하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모은 돈이라도 까먹지 않고 버텨야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황혼의 자금을 탐하는 세력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들은 금융사일 수도, 범죄자일 수도, 바로 가족일 수도 있다. 서울신문은 ‘노후자금 착취 리포트: 늙은 지갑을 탐하다’ 시리즈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는 은행과 증권사 등에 속아 돈 잃고 나락에 빠진 고령층의 실태를 담았다.

최근 2년 새 잇달아 터진 사모펀드와 파생상품 대규모 손실 사태 때 노인 투자자의 피해액이 3조원가량인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부실 펀드를 판 금융사 임직원 중 일부는 사고 이후에도 두둑한 성과급을 챙기고 승진까지 해 피해자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4일 서울신문이 금융 당국과 각 은행·증권사 등의 자료를 토대로 연령대별 판매액이 파악되는 대규모 환매 중단 펀드 5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팝펀딩 펀드,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펀드(DLS·DLF))에 60세 이상 고령자가 투자한 돈을 합산해 보니 모두 9864억원이었다.

노인 투자액이 따로 집계되지 않은 사모펀드 피해액까지 모두 더하면 3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은행·증권사(외국계 포함) 72곳이 201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판매한 사모펀드액(76조 9665억원) 가운데 45.4%(34조 9518억원)가 60세 이상에게 팔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환매 연기됐거나 연기가 예상되는 사모펀드는 50개 운용사의 568개 펀드인데 전체 규모(설정액)는 6조 7689억원이다. 연령대별 판매 비율을 이 설정액에 적용해 계산하면 노인 피해액은 3조 730억원으로 나온다. 올해 기초연금을 제외한 전체 노인복지 예산(3조 1755억원·일반회계 본예산 기준)과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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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향후 피해액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 당국은 현재 운용되는 전체 사모펀드 1만여개의 건전성을 2023년까지 전수조사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실 펀드가 더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노인 고객의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판매사 임직원은 승진뿐 아니라 고액의 성과급까지 챙겼다. 라임 펀드의 부실을 알고도 이를 판매한 임모 전 신한금융투자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사업본부장은 지난해 15억 4100만원을 받아 사내 연봉 1위에 올랐다. 그는 최근 1심에서 징역 8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하나은행에서 DLF를 가장 많이 판매한 일반 영업점 중 한 곳인 서울 서초구의 한 지점장은 인근 지역 본부장으로 영전했다. 신한은행의 서울 강북 복합지점(PWM센터)에서 라임 등 사모펀드를 팔아 피해를 낳은 PB팀장도 승진해 같은 곳의 지점장이 됐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금감원의 제재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금융사가 책임을 인정한다면 선제적으로 인사 조치할 수 있지만 (그냥 두는 것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유대근·홍인기·나상현·윤연정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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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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