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퇴근하면 연락두절’ 권하는 외국기업

[커버스토리] ‘퇴근하면 연락두절’ 권하는 외국기업

입력 2017-01-21 01:56
수정 2017-01-2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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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바람

“미국도 주말에 휴대전화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일을 간혹 시키기는 하죠. 하지만 어떤 유형의 업무든 시급의 30% 정도를 지급합니다.”

미국 오리건주의 글로벌 광고홍보대행사에 다니는 이모(31·여)씨는 20일 “이곳의 상사들은 주말에 업무 전화를 할 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며 “연락만으로 추가 수당을 주지는 않지만 추가 업무로 이어지면 철저하게 대가를 지급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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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직 빼곤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 안 써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업무 외 시간에 근로자의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1일 퇴근 후와 주말, 휴일 등엔 회사의 이메일이나 전화·메시지 등에 응답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골자로 한 근로계약법을 발효했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글로벌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야근에다 스마트폰 업무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24시간 근무체제’라는 비판까지 듣는 우리나라로서는 말 그대로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는 이모(29)씨는 “특수직은 모르지만 대부분 직원의 명함에는 아예 휴대전화 번호가 없다”면서 “간혹 회사에서 지급한 휴대전화의 경우에는 명함에 번호를 써넣지만 대개 임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고 전했다. 상사와 부하가 서로의 사무실 번호만 알기 때문에 업무 외 시간에 연락이 자연스레 차단된다는 것이다.

●저녁·주말·휴일엔 사내 이메일 차단

폭스바겐 독일 본사는 평일 오후 7시 15분(퇴근 30분 후)부터 이튿날 오전 7시(출근 30분 전)까지와 주말 및 휴일에는 직원 4000여명의 스마트폰 이메일 기능을 차단한다. 고위직 및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직원만 예외다. 존슨앤드존슨은 2015년 7월부터 주말, 휴일, 평일 오후 10시 이후에 관리자 및 임원을 포함해 모든 직원이 사내 메일을 교환하지 못하게 했다.

다임러 독일 본사 역시 직원이 5일 이상 휴가를 가거나 휴직했을 때 받은 이메일은 자동으로 삭제한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직원의 부재 정보와 임시 담당자의 연락 정보를 받게 된다. 국내에서도 LG유플러스가 밤 10시 이후 카카오톡 등을 통한 업무 지시를 금지한 바 있다. 또 지난해 6월 근로시간 외 통신수단으로 업무 지시를 금지하는 ‘퇴근 후 카톡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축소, 업무 범위 구체화, 정신적 스트레스의 적극적 산재 인정 등 다른 법이나 정책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시간의 확장은 근로자에게 고단함을 주는 동시에 가정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근로체계의 억압성과 불평등을 점검하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7-01-2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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