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월요일 새벽, 축구의 정의가 내려진다

[커버스토리] 월요일 새벽, 축구의 정의가 내려진다

입력 2014-07-12 00:00
수정 2014-07-12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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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이 공을 쫓아 90분을 뛰고 나면…

2014 브라질월드컵이 딱 두 경기를 남겨 놓았다. 모두의 관심은 14일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펼쳐질 결승전으로 향하고 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1990 이탈리아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다시 결승에서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벌이게 됐다. 24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독일, 24년 전의 아픔을 설욕하려는 아르헨티나의 대결은 브라질월드컵 최고의 경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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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대 앞에 자비심이란 없다… ‘원팀’ 전차군단

객관적 전력에서는 독일이 우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의 독일은 이번 대회에서 탄탄한 수비 조직력과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력을 과시했다. 독일을 만난 상대들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준결승에서 개최국이자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브라질을 맞아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무려 7골을 몰아쳐 산산조각 내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 같은 독일의 절정의 경기력 원천은 ‘원팀’으로 요약될 수 있다. 20세기 후반 스타플레이어들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던 독일 축구는 1998 프랑스월드컵 8강전 크로아티아에 0-3으로 완패한 뒤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다. 전국적으로 유소년 선수들을 육성하는 동시에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자국 분데스리가를 활성화시켰다.

현재 독일 대표팀의 뼈대는 분데스리가와 유럽을 통틀어 최강의 클럽으로 군림한 바이에른 뮌헨이다. 최전방의 토마스 뮐러와 마리오 괴체를 시작으로 중원의 사령관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니 크로스, 주장인 필리프 람과 최후방에서 벽처럼 버티고 있는 제롬 보아텡, 그리고 매 경기 무자비한 선방쇼를 펼치는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까지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멤버들이 대표팀의 공격-미드필드-수비-골키퍼로 이어지는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 메주트 외칠(아스널), 사미 케디라(레알 마드리드) 등의 스타플레이어들도 유소년 프로그램을 거쳐 성장했던 선수들이다. 경기 내내 이들의 호흡이 무서울 정도로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플레이 스타일은 약간 다르지만 2014년의 독일대표팀은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를 뼈대로 레알 마드리드를 가미했던 2010 남아공대회 우승팀 스페인의 구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FIFA 랭킹 5위의 아르헨티나는 토너먼트를 가까스로 통과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 적합한 평가다. 조별리그를 무난히 통과했지만 16강전 스위스와 8강전 벨기에에 모두 1-0 신승을 거뒀다. 네덜란드와 치른 준결승에서는 연장 무승부 끝에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AS모나코)의 신들린 선방 덕에 승부차기로 간신히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 팀보다 위대한 선수도 있다… ‘메시아’ 메시

이처럼 객관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만만한 상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가 있기 때문이다. 메시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축구의 격언을 무색하게 만드는 선수다. 그는 상대의 순간적 방심을 여지없이 패배로 연결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메시는 F조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자책골을 유도한 뒤 특유의 드리블 돌파에 이은 왼발 슈팅으로 골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고, 이란을 상대로는 90분 혈투를 마감하는 왼발 슈팅으로 승부를 매조졌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프리킥을 포함해 2골을 넣는 맹활약으로 상대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조 1위를 확정했다. 여기까지는 기존에 메시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보여왔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메시의 진화와 발전을 볼 수 있는 경기는 16강 스위스전이었다. 메시는 연장 후반 막판 스위스의 장신 수비진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오른쪽 측면에서 침투하던 노마크 상태의 앙헬 디마리아(레알 마드리드)에게 기막힌 어시스트를 했다. 평소 같으면 자신이 결정지었을 장면이었다. 메시가 자신이 만들어 낸 애매한 골 찬스를 동료에게 양보해 확실한 골을 이끌어 낸 것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던 8강 벨기에전과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것 자체로 위협적인 자신에 대한 상대의 인식을 역이용해 수비수들을 끌고 다녔다. 공간 침투만 노렸던 기존의 모습과 달리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수비에 가담해 상대의 공격 작업을 느리고 무디게 만들었다. 이 같은 메시의 변화는 생애 첫 월드컵 우승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됐다. 수차례의 프리메라리가 우승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 무려 네 번의 FIFA발롱도르,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우승과 수상 경력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월드컵의 갈증을 풀 기회가 바로 이번 대회인 것이다.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을 들어 올렸던 1990 이탈리아대회 당시 잉글랜드의 공격수였던 게리 리네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공을 쫓아 90분 내내 뛰어다니지만,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다.”

훗날 고향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 세워질 ‘메시 박물관’에 월드컵 수집만 남겨둔 메시의 불타는 열망이 이번 대회에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리네커의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아르헨티나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를 넘어설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 사령탑 전쟁… 냉정한 승부사 vs 구조조정 전문가

세계적 명장으로 거듭난 독일 요아힘 뢰브 감독은 지난 8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며 최강의 조직력을 만들어냈다. 오로지 팀의 조직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데 모든 전술을 집중시키는 유형의 감독이다. 선수들을 뛰게 만드는 동기 부여 역시 탁월하다. 또한 상대 전력이나 돌발 변수 등에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승부사다.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 이런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뢰브 감독은 5-0으로 앞서 있던 후반13분 미로슬라프 클로제(라치오)를 빼고 윙포워드 안드레 쉬를레(첼시)를 투입, 공격력을 강화했다. 이 선택이 7-1이라는 역사적 스코어를 창조했다.

이에 맞서는 아르헨티나의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은 2011년 여름 사령탑에 오른 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표팀을 깔끔하게 정리한 ‘구조조정 전문가’다. 카를로스 테베즈(유벤투스), 하비에르 파스토레(파리생제르맹) 등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계륵 스타’들을 모조리 대표팀에서 몰아냈다.

또 논란의 중심이었던 대표팀에서의 메시 활용법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는 메시에게 “네 마음대로 자유롭게 해 봐”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위치상으로 메시를 아주 절묘하게 배치해 스트라이커, 윙어, 플레이메이커 중에서 자기가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동시에 약점으로 지적되던 수비 조직력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재구성, 팀을 완전체에 가깝게 만들어 아르헨티나를 24년 만에 결승까지 올려놨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2014-07-1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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