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의 어머니’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에게 듣는 ‘동물권’
자연 경시한 인간, 환경 위기 직면
갇힌 동물들 놀이도구 전락은 잔인
학대받은 개, 자신 보호 위해 물어
고기 대신 식물성 대체육이 바람직
육식 필요하다면 동물 고통 최소화
아시아 ‘개 식용’ 비하도 어리석어
제인 구달 박사는 지난 12일 서울신문 스콘랩과의 줌 화상 인터뷰에서 “개는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동물을 존중해야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기후 변화나 전염병 창궐 등 우리가 직면한 위기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구달 박사의 모습.
캐롤린 자그놀리·제인구달연구소(JGI) 제공
캐롤린 자그놀리·제인구달연구소(JGI) 제공
-환경 운동을 시작하신 이후로 참 많은 강연과 인터뷰를 해 오셨습니다.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그동안 인간이 숲을 베고 환경을 오염시킨 결과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됐고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빈도와 규모로 태풍, 폭염, 홍수 등의 이상 기후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축화한 동물은 비좁고 청결하지 않은, 열악한 공장식 농장에 살고 있어요. 야생동물이 함부로 사고팔리면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인간에게 옮겨오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죠. 인류가 직면한 위기는 결국 인간도 동물이고,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경시해 온 탓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동물과 자연을 대해 온 방식과 관점 자체가 달라져야 해요.”
1980년대부터 전 세계를 돌며 환경 운동을 펼쳐 온 그는 ‘제인 구달 생명의 시대’, ‘희망의 이유’ 등 자신이 쓴 책을 통해 생명 존중의 중요성을 알려 왔다. 매년 수백만명의 청중을 줌(화상 회의 플랫폼) 등으로 만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와 공존하는 데 일조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도 동물이고, 다른 동물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해 오셨습니다. 언제부터 침팬지 연구를 꿈꾸셨나요.
“동물도 성격이 제각각이고, 인간처럼 모든 감정을 느낀다는 걸 ‘러스티’로부터 배웠어요. 어린 시절을 함께한 강아지입니다. 제게는 자연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자 친구이기도 했죠. 정말 영특했어요. 물론 그전부터도 마당에 사는 다람쥐, 새, 거미 등을 온종일 관찰했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는 TV나 핸드폰이 없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면 꼭 아프리카로 가 동물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침팬지만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어요.”
구달 박사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12년 내한해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에 인지도가 높아진 그 종이다. 제돌이는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돼 서울대공원에서 수년간 쇼에 이용됐다. 당시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구달 박사와 제돌이의 만남을 주선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제인구달연구소(JGI·1977년 설립)를 통해 132개국의 세계인들이 제돌이 방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체험형 동물원이나 동물카페, 농장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수족관에 돌고래를 가두는 것처럼 동물을 존중하지 않고 사람의 놀이 도구로 여기는 일은 잔인합니다. 동물의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공간이 제공되지 않을뿐더러 동물이 사람과 떨어져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어린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 갇혀 겁에 질린 채 먹이를 받아먹는 동물을 보면서 뭘 배울 수 있을까요? 영국에도 예전엔 그런 시설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어요. 동물도 사람과 똑같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인식과 함께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내에서 큰 관심사인 반려동물 이슈에 대해 물었다. 특히 개물림 사고나 개 식용 문제 등 동물학자에게는 민감할 법한 질문을 꺼냈다.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간 잇단 개물림 사고로 인해 일부 반려인과 비(非)반려인 간 갈등이 커졌습니다. 간극을 좁힐 방법이 있을까요.
“미국에서도 과거 개물림 사고를 대대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주인에게 조금이라도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물고 방어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연쇄적인 거죠.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제가 침팬지 연구를 오래 한 나라인 탄자니아에선 사람들이 “개는 집을 지키는 동물인 만큼 사나운 성격을 유지해야 하니 다정하게 대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JGI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개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교육해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이나 탐지견 등 개가 사람을 어떻게 돕는지 소개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은 개는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기분을 감지하죠. 반려인이 슬퍼할 때 위로도 해 주고요.”
-지난해부터 한국 정부는 개 식용 종식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반발 여론을 우려해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돼지나 소, 닭은 거리낌없이 먹는데 개만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반대 의견이 많습니다.
“저는 개고기만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육식 자체를 반대하죠. 물론 개는 인류사에서 인간과 가장 친한 친구였기에 특별하기는 하지만요. 육식은 그 과정에서 행복, 슬픔, 좌절, 화, 고통 등 모든 감정을 느끼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게 됩니다. 육식을 꼭 해야 한다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사육과 도축이 이뤄져야 합니다. 예전에는 개를 도살하기 전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해야 맛이 좋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죽였다고 들었어요. 여전히 그 방식으로 도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끔찍합니다. 육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고기 대신 식물성 대체육으로 만든 비욘드 버거(미국 대체육 기업인 비욘드미트의 주력 상품)를 먹을 수도 있습니다. 맛이나 영양에 차이가 없다면 육식을 할 이유가 없는 거죠.”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등 서구권에서는 종종 아시아의 개 식용 문화가 야만적이라 비하하기도 합니다.
“정말 어리석은 겁니다. 육식을 하는 이상 그 대상이 무엇이냐에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실제로 돼지는 개만큼이나 굉장히 지능이 뛰어난 동물입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한 나라의 문화입니다. 제가 과거에 소, 돼지 고기를 먹는 걸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듯 말이죠. 개 식용 종식은 다른 문화권과는 관계없이 합의를 이뤄 나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외부의 시선이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에 의존해서만은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이 구달 여사가 멘토나 롤모델이라고 언급합니다. 생각이나 관점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설득하는 비결이 있으실까요.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려야 해요. 제 어머니께서 (생전에) 누군가 만나면 일단 처음엔 귀를 열고 들으라고 가르치셨어요.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 뒤에 서로 대화할 만한 공통점이 있는지 찾습니다. 손주가 있다거나, 나무를 좋아한다거나 공통점은 무엇이든 될 수 있죠. 그다음엔 스토리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이성적으로 설득하기보다 마음을 움직이려는 거예요. 이야기가 마음을 울리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에 작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 제인 구달은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환경운동가. 1960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베 침팬지 보호구역으로 가 10여년간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며 인간 외에 다른 영장류도 도구를 사용하고,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침팬지 행동 연구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전 세계 20여개국에 야생동물 연구를 위한 제인구달연구소(JGI)를 설립했으며, 1991년에는 환경과 동물, 이웃을 돕는 풀뿌리 환경운동 단체인 ‘뿌리와 새싹’을 제안해 62개국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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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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