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공간이 빚은 다른 언어들] 북촌에서… 삶의 소소한 만족을 보다

[다른 공간이 빚은 다른 언어들] 북촌에서… 삶의 소소한 만족을 보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6-10-10 17:42
수정 2016-10-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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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공간은 시인과 시인의 언어에 어떤 자취를 남길까. 그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시집이 최근 나란히 나왔다. 신달자(73) 시인은 두 해 전 이사한 서울 북촌의 한옥집에서 ‘생의 출발점과 종착지’를 실감했다고 시집 ‘북촌’(민음사)에서 토로한다. 재독 시인 허수경(52)은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로 이국의 땅에서 모국어로 새긴 시간의 지층을 쓰다듬는다.

신달자 시인
신달자 시인
‘봉숭아 씨’만 하고 ‘구절초 한 잎’만 한 방에 몸을 누인다. 시인은 그제서야 ‘나직한 귀향’을 실감한다. 두 해 전, 열 평짜리 한옥으로 터전을 옮기며 북촌의 풍경을 이룬 신달자 시인의 얘기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8길 26. 시인의 한옥 대문에는 명함 한 장만 한 당호가 붙어 있다. 공일당(空日堂). 원로 시인 김남조는 “혼자 사는 여자 집에 공(空) 자는 좀…”이라며 저어했지만 신달자 시인은 주저하지 않았다. 비우면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 비우면 새롭게 쌓이는 법/공이 만(滿)이 되는 것이라/혼자건 둘이건 비우건 쌓이건/다 같은 것이라/그 순간 시간이 출렁 섰다가 가네’(공일당)

북촌에서 보낸 시간은 그 믿음을 촘촘히 채워 준다. 곳곳을 걸을 때마다 “사랑의 또 다른 무늬”가 새겨지고 “열 평만 내 것인 줄 알았는데/북촌이 다 내 것”(내 동네 북촌)이라는 자족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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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집의 출발선은 시인이 북촌으로 이사한 첫날 밤 그어졌다. 새 노트에 ‘북촌’이라는 글자를 새긴 게 시작이었다. 시인은 “익숙함이 내 마음을 가리기 전에, 감동이 있고 놀라움이 있을 때 쓰자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 조급함과 부지런함이 밀고 나간 70편의 시들이 이번 시집을 이뤘다.

‘주소 하나 다는 데 큰 벽이 필요 없다/지팡이 하나 세우는 데 큰 뜰이 필요 없다/마음 하나 세우는 데야 큰 방이 왜 필요한가/언 밥 한 그릇 녹이는 사이/쌀 한 톨만 한 하루가 지나간다’(서늘함)

옹색한 방이 불편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외려 그곳에서 삶의 소소한 잔무늬가 주는 위안과 가치를 깨닫는다. ‘여기가 내 생의 중심인 것 같은/이곳이 내 혼의 종착지인 것 같은/아니/내 생의 출발 지점같이’(가회동 성당 1) 느껴지는 이유다. 노년의 시인 안에 열세 살 속마음이 고향집 툇마루를 밟던 발바닥처럼 꼼지락거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애걔걔/강아지 혓바닥만 한 툇마루를 봤나/내 귀만 한 툇마루에 햇살 비치면/발바닥이 저릿하네/강을 천 개나 건넜는데/내 몸에/어린 발바닥 꼼지락거림이 아직 남았는가’(툇마루)

늘 ‘기쁨의 계단을 오른’ 것은 아니다. 시인은 “북촌에 사는 동안 내내 아팠다”고 토로한다. “지병의 통증이 내 의욕을 뿌리째 흔들었지만 북촌에 대한 의욕으로 통증을 견디어 내기도 했다”는 그는 “북촌 사랑에 대한 작은 미소 하나쯤으로 생각하고 이 시집을 내는 용기를 냈다”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6-10-1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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