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실존 美 특수부대 비사 다뤄…고무로 만든 가짜 전차·대포로 적 속여
부대원 전선 곳곳 돌며 기만작전 ‘공연’‘속임수 게임’ 예술적 창의력으로 승리
고스트 아미/릭 바이어·엘리자베스 세일스 지음/노시내 옮김/마티/320쪽/1만 8000원
디데이인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첫날, 오마하 해안과 수평선을 메운 연합군 병력과 군수 물자.
마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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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아미 부대원인 프레드 폭스가 재치 있게 그려낸 부대 임무와 작전 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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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아미 부대원들이 모조 공기주입식 탱크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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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학살의 비극적 전쟁으로 사상자가 5000여만명에 달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오직 속임수 하나만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군 특수부대가 존재했다. 게다가 그 부대에 참전한 용사들 상당수가 군대와는 전혀 무관하게 여겨지는 인간 유형인 예술가들이었고, 자신들끼리는 공공연하게 서로를 사기꾼이라고 불렀던 이들이었다는 점도 이채롭다.
신간 ‘고스트 아미’(ghost army)는 2차 세계대전에 실존했던 특수부대 얘기다. 제23본부 특수부대, 일명 ‘고스트 아미’의 부대원은 고작 1100여명. 이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단 하나. 독일군을 속이는 것이었다. 1996년까지 미 국방부 군사기밀로 이들의 활약상은 봉인돼 있었다. 책은 반세기가 지나서야 드러난 23부대 괴짜들의 전투, 그들만의 전쟁을 실감 나게 재구성했다.
고스트 아미가 주둔하는 최전선에서는 탱크뿐 아니라 지프, 트럭, 대포까지 온갖 모조 무기가 바람만 넣으면 마술처럼 솟아났다. 23부대는 전차, 트럭, 화물차, 불도저 소리, 강을 건너기 위해 임시로 놓은 부교를 설치하는 소리, 병사들의 욕설까지 다양한 전쟁터의 소음을 녹음해 마치 사단급이 주둔 중인 것처럼 음향전도 펼쳤다.
23부대의 작전은 전선 곳곳을 돌며 기만 작전을 펼치는 일종의 ‘순회 공연’이었다. 진짜 전투를 하는 실전 기갑 부대로 위장해 작전 지역에서의 미군 병력 규모를 부풀리는 게 핵심 임무. 부대원들은 다른 부대 소속 마크로 바꿔 달고 마을 술집이나 식료품점에 들러 거짓 이동 경로와 작전을 흘렸다. 나치 첩자들이 이를 독일군에게 정보로 팔도록 말이다. 그렇게 23부대는 아군마저도 숱하게 속이며 작전을 수행해 나갔다.
부대원들은 군인이기 전에 예술가였다. 예술적 재능으로 뭉친 병사들이 그린 수많은 수채화와 드로잉이 전후에 발굴됐다. 오죽하면 최전선에서 이들은 전시회를 열 정도였다. 지난해 별세한 추상주의 화가 엘즈워스 켈리, 패션 디자이너 빌 블라스, 야생동물 화가 아서 싱어, 사진작가 아트 케인 등이 고스트 아미 출신이다.
고스트 아미는 1945년 독일 라인강을 건너 나치 최후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작전에서 빛을 발했다. 미 9군 소속 제30보병사단과 제79보병사단이 실제 공격 지점보다 남쪽으로 16㎞ 아래에서 도강 공격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게 고스트 아미의 임무였다. 1100명의 23부대는 마치 3만 병사가 라인강을 돌파하는 것처럼 연출했다. 투입된 모조 전차와 군용차만 200대가 넘었다. 고스트 아미의 기만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두 사단이 실제로 라인강을 돌파하면서 발생한 사망자는 31명에 그쳤다. 고스트 아미의 마지막 공연은 기밀로 남았지만 군 지도부는 비밀리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전쟁도 끝났다.
저자는 “23부대는 미술가, 디자이너, 무선통신사 등으로 구성된 배역진이 진짜 무기 대신 고무로 만든 가짜 무기와 세계 최첨단 음향 효과 장치와 예술적 창의력으로 무장한 채 작전을 폈다”면서 “그들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에 자신들의 생명이 달려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고 평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6-09-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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