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 속 신성의 반대 개념 마녀 희생양 삼아 300여년간 5만여명 ‘마녀’ 처형
여성을 악의 대명사 격으로 묘사지배층의 반여성적 시각 드러내
마녀/주경철 지음/생각의 힘/336쪽/1만 6000원
프랑스 대혁명 이후인 1798년에 그려진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마녀들의 사바스(집회)’.
집행관의 실수로 산 채로 화형에 처해지는 마녀 용의자. 그녀는 끈을 풀고 불 속에서 뛰쳐나오 길 3번이나 반복했고, 집행관은 처형을 완수하기 위해 그녀를 기절시켜야 했다.
300여명을 마녀로 재판해 화형에 처한 독일 밤베르크 대성당의 주교 아쉬하우젠 초상화.
흔히들 ‘마녀사냥’은 중세 시대의 광기로 생각된다. 그러나 마녀사냥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쳐 계몽주의의 환한 빛이 세상을 비추는 근대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중세 이후 근대까지 공포에 떨게 했던 마녀사냥은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1805년 최후의 재판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저자가 근대 초에 마녀사냥이 정점을 이뤘다는 점에 주목하며 풀어낸 원인은 이렇다. 문명의 이면에 ‘야만의 심연’을 정치적 기제로 숨겨 놓았다는 지적이다. 서구 근대성은 진리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했고, 마녀사냥은 이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근대성의 산물이었다.
중세부터 유럽은 표면적으로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종교 문화로 떠올랐지만 실상은 귀신이나 요정, 각종 영과 고대 이교 신들의 흔적이 강력하게 잔존해 있었다. 초자연적인 힘들에 대한 믿음은 민중들에게 마술적 세계관이 되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교회와 국가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각하고 신민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동원한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점을 치거나 병을 치료해주던 민간 신앙 전파자들이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렸으며 국가와 교회, 마을공동체의 복합적 관계 속에 16~17세기 마녀사냥이 유럽을 휩쓸었다. 1400년부터 1775년 사이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마녀 재판으로 처형된 사람은 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점에서 마녀사냥의 첫 번째 성격은 민중을 억압하는 근대성의 기제였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마녀사냥을 유럽 문명 발전의 궤적에서 한때 일탈했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자라온 현상으로 규정한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다. 근대 유럽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과 마성 등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확고했고, 이런 의미에서 신성의 반대되는 개념인 마녀는 억지로라도 발명됐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마녀사냥이 ‘반(反)여성성’을 띤 억압이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성 희생자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1350년 이전 악마적인 사악한 행위의 재판 대상자 중 70%가 남성이었고 30%가 여성이었지만 14세기 후반에는 남성 대 여성 비율이 42% 대 58%로, 15세기에는 여성 비율이 60~70%로 늘게 되고, 16~17세기로 가면 80%에 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지배계층인 남성들의 인식에서 여성은 욕망에 약하며, 모든 악덕은 그들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반여성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같은 생각은 악의 대변인인 마녀가 대개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고착화된다.
프랑스의 영웅이자 신의 뜻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잔 다르크는 이 점에서 마녀라는 강한 의심을 받았다. 잔 다르크를 생포한 영국 역시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의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녀가 마녀 혹은 이단이라는 증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잔 다르크는 자신을 우상화하고, 악령의 도움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주 교수는 결론에서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행위는 중·근대 유럽뿐 아니라 초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나치 치하에선 유대인이, 파시스트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편을 악으로 모는 마녀사냥은 문명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야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6-05-07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