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한 엄마의 행복한 아기를 위한 동화

불운한 엄마의 행복한 아기를 위한 동화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6-04-22 17:42
수정 2016-04-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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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 동화집/실비아 플라스 지음/오현아 옮김/마음산책/128쪽/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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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는 늘 비슷한 프레임으로 소비된다. ‘불운한 삶으로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한 여류 시인’. 이 참혹한 결말이 플라스를 지금껏 향유하게 만든 동력이라면 너무 지독한 굴레일까. 그가 사후 출간된 책으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라는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뻔하게’ 소비됐던 플라스의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그가 태어날 아이를 고대하며 1958~1959년 쓴 동화 3편을 엮은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이다.

서른의 플라스가 죽던 1963년 겨울, 영국은 100년 만에 가장 혹독한 추위에 휩싸였다. 두 살 딸과 9개월 아들은 추위 때문에 자주 아팠다. 집에는 전화도 없었다. 당시 남편 테드 휴스의 불륜으로 별거 중이었던 플라스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부엌 오븐의 가스를 틀고 죽기 전 플라스는 아이들이 자는 방에 가스가 새 나갈까 문틈을 젖은 수건과 옷가지로 틀어막았다. 아이들이 깨면 먹을 간식까지 챙겨 뒀다.

이렇게 가없는 사랑으로 플라스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지었다. 세 편의 동화는 입안에 달큰하게 고이는 버터처럼 따스하고 진한 풍미를 낸다.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답게 절묘한 묘사가 빛나고 이미지는 애니메이션처럼 선명하다. 말맛을 살린 문장들은 때론 시의 운율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며 매끄럽게 읽힌다. 뒤에 함께 실린 원문을 보면 시인의 이런 노력이 확인된다. 구연동화를 들려주듯 한껏 즐겁게 부풀린 이야기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아이들을 이끈다.

‘언제 어디서나 어울리는’ 정장 하나가 갖고 싶은 일곱 형제의 막내 맥스. 우연과 우연이 겹치며 마침내 겨자색 정장 하나가 손에 들어왔을 때 뛸 듯 기쁜 아이의 마음은 내 마음 같다(이 옷만 입을 거야).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체리 아줌마의 부엌은 냉장고, 세탁기, 토스터 등의 반란으로 위기를 맞는다. 부엌을 관장하는 소금 요정과 후추 요정은 다른 부엌 친구들의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체리 아줌마의 부엌). 마지막 ‘침대 이야기’는 잠들기 전 아이의 침대에서 읽어 주면 까르륵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시로 쓰인 동화다.

역자의 말은 이 동화 속에 깃든 힘을 일깨워 준다. “유년 시절, 잠자리에서 듣던 어머니의 이야기만큼 우리의 영혼에 깊이 아로새겨지는 것이 또 있을까요. 졸음에 겨운 어머니의 나른한 목소리에서, 그리고 그 목소리를 타고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현실을 살아 낼 수 있는 힘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6-04-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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