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 모아 전주에 모악출판사 세워
‘큰 어른’ 정양 시인의 ‘헛디디며… ’ 출간정양 시인
손택수·박성우 시인과 함께 모악시인선 기획위원을 맡은 문태준 시인은 “지역 문학인들이 나서 출판사를 세워 잠재력 있는 작가를 발굴한다는 것 자체가 새롭고 특별한 시도”라며 “좋은 작품을 갖고 있지만 기존 출판사와 관계를 맺지 못해 책을 내지 못했던 문인들과 독자들을 가까이 이어 주는 책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모악시인선의 첫 주인공인 정양 시인은 전북 지역 문인들에겐 ‘큰 어른’ 같은 존재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한국작가회의의 후배 작가들이 마련한 ‘아름다운 작가상’(2002년), 창비가 제정한 백석문학상(2005년) 등을 수상했다. 이번 시집은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정 시인은 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요즘 후배들이 시 쓰는 거 보면 제가 굳이 시를 안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시란 게 참 그렇다. 어려운 시는 쓰기가 쉽고, 쉬운 시는 쓰기가 어렵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이없고 황당한 역주행의 시절이 어서 마감되기를 빈다”는 시인의 말에서도 읽히듯 그의 시편들은 ‘못된 짓만 못된 짓만 풀어먹는 일들이/나날이 늘어가는 세상’(잃어버린 이름)에 대한 쓸쓸한 성찰이자 뼈아픈 일침이다.
‘사실 나는 이제껏 외눈으로 살지 않았나/핏발 선 눈을 안대로 가리고 거리에 나선다/남은 눈알에 헛힘이 쏠리고/발이 헛디뎌지고 손잡이가 헛짚인다/시력이 형편없어도 무슨 구실은 했던지/외눈으로 세상을 가늠하기가 만만찮다/핏발 선 눈을 끝내 가리고/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핏발 선 눈을 가리고)
이날 자리에 참석한 안도현 시인은 “작년 문학권력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국문학판 안에서도 자기반성이 있었다”며 “오로지 상업적인 목표만을 위해 출간하는 출판사 행태에 대한 반성,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시인도 “수호지에서 의로운 호걸들이 양산박에 모여들었듯 좋은 글쟁이들이 모악출판사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모악은 시, 소설은 물론 인문서도 꾸준히 펴낼 계획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6-04-05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