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탐험
보문호에 비쳤던 ‘어머니의 달’이 까마득 가물거리는데, 그 새벽에 내가 올라섰던 바위 위에 다시 앉으니 으스름 달빛에 올록볼록 ‘어머니의 가슴산’들이 눈에 차 오른다. 아아, 늙은 귀향객의 눈에 산들이 먼저 들어오는 뜻은 돌아가 누울 곳을 찾음이 아닌가.
신라의 달은 사람을 신들리게 하는 것같다. 그 옛날 철 모르고 뛰어다녔던 그곳들을 이제는 역사의 주인공이 된 듯 착각인지 미친 듯이 돌아다닌다.
한국교육과정 평가원장을 지낸 정강정(72)씨의 첫 에세이집인 ‘경주 탐험’(에세이스트사)의 한 대목이다. 저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등 50년간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그동안 틈틈히 월간 에세이에 기고해온 수필을 최근에 출판사 권유로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경주를 역사탐험하듯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공간별로 역사적 사실과 함께 자신의 소회를 곁들여 안내한다. 신라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어린 나정과 포석정을 거닐면서 천년의 역사와 왕업의 부침에 숙연해지고,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월정교에서는 사랑과 계율을 생각한다. 호국의 냇물인 문무대왕 해중릉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당대의 대표화랑 기파랑의 현신을 소망해보기도 한다.
“밀레니엄 왕국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 보면 철없이 달려온 칠십인생 오십년 공직생활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그에게 “경주는 눈 감으면 그립고 눈 뜨면 달려가 안기고 싶은 어머니의 가슴”이다. ‘서라벌의 달빛에 취해 잠깐 이 세상에 다녀간 달 나그네’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저자가 오십년 공직생활을 회고하는 또 다른 탐험기를 출간하기를 기대해본다.
박현갑 기자 eagledu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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