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구호품 조달 지연에 “정치가 문제” 주민들 분통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찰링 마을.2일 오전(현지시간) 이곳 경찰서 앞 공터에는 수십명의 주민이 모여 정부 구호품 분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경찰과 주민 대표들이 한참을 논의한 끝에 분배가 시작됐지만, 곧 항의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남성이 “다 같이 집이 무너졌어도 옆집은 쌀은 꺼낼 수 있었는데 우리 집은 아예 꺼낼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옆집보다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 대표가 다독인 덕분에 그도 결국 할당된 만큼의 쌀을 받아갔지만, 구호품 분배에 관한 이재민들의 불만은 높아만 간다.
이 마을 청년단체 회장 기안 키쇼르(37)는 기자에게 “그래도 우리 마을은 식량은 다소 있는 편”이라면서 “문제는 마을 주민 95%가 밖에서 자고 있는데 천막이나 텐트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우리가 뭐가 필요한지 제대로 파악도 안 하고 있다”며 혹시 마을을 도와주려는 한국 구호단체가 있으며 자신이 속한 단체와 바로 연락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다른 주민은 “정치인들이 서로 자기 정당 이름만 내세우려 하고 지지자들이 있는 지역에만 구호품을 주려고 한다”며 정치권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또 다른 주민도 “외국에서 구호품이 많이 온다고 하는데 정부 지원이 왜 이렇게 느린지 모르겠다”며 “카트만두만 신경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카리파티 마을도 상황은 마찬가지.
빈다 마가르(16·여)는 2층이 무너져 곧 떨어질 것 같은 벽돌과 양철판이 가득한 집 처마 밑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에만도 진도 5.0과 3.9의 여진이 있었기에 위험할 텐데 왜 다른 공터로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천막이 없어 밖에서 비를 맞고 있기 힘들어 이곳으로 옮겼다”면서 “진동이 온다 싶으면 바로 멀리 뛰어간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주민들 스스로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카트만두의 한 여행사에서 일하는 소한 쿠마르 카르키(23)는 1층 일부분만 남은 형의 집에 굵은 나무로 버팀목을 세운 뒤 그 안에 들어가 성한 가재도구를 꺼냈다.
카르키는 “정부가 발표한 임시 공휴일도 끝나가 이틀 뒤에는 출근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쓸 만한 물건은 별로 찾은 게 없다”고 말했다.
힌두교계 봉사단체 ‘옴 샨티’ 카리파티 지부 소속 부녀회원들은 읍내 식료품점에서 재료를 사 주민들에게 줄 무료급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에는 외국에서 보낸 많은 구호품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이를 분류하고 옮기는 인력과 장비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네팔 국내외 언론에서는 밀려드는 구호품이 공항과 국경에 적체돼 있다며 정부의 신속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지만, 이 물품이 산간 지역 이재민들에게 전달될 시점은 가늠하기 힘들어 보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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