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이제는 우리 교육을 만들어 낼 때/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이제는 우리 교육을 만들어 낼 때/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 2019-09-29 17:26
업데이트 2019-09-30 01:2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강연을 하다 보면 종종 ‘잘하고 있는데 왜 비판을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듣는다.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은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칭찬을 언급한다. “미국 어린이들은 매년 한국 어린이들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1개월이나 적다.”, “한국의 교사는 의사나 기술자가 받는 수준에서 봉급을 받고 있으며 존경받는 직업이다.”, “한국과 핀란드는 좋은 교육제도를 가지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한 말은 실제로 우리나라의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하지만 그 대중 매체들은 우리의 교육 실상을 보여 주는 실증적 자료 분석 결과에 대해서는 그만큼 자세히 보도하지 않았다.

201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자료를 통해 우리 교육의 실상을 보자. 한국인의 역량은 만 15세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에서는 최상급이다. 그런데 좀더 나이가 든 다음에 치르는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조사에서 측정하는 세 역량인 수리력, 언어능력, 그리고 컴퓨터 기반 문제해결력 모두에서 20세 후반부터 OECD 평균 이하로 떨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평균과의 차이가 더 커진다. 이 보고서를 쓴 연구자들은 이렇게 역량이 떨어지는 이유로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초중등 교육, 질 낮은 대학 교육, 그리고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 직장 생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가 나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대학 교육에서 어떤 변화의 미동도 감지되지 않는다. 매년 적지 않은 돈이 대학 교육 개혁을 위해 투입되고, 비싼 돈을 들여 외국의 석학을 초청하는 다양한 포럼이 열리며, 대학 총장이 바뀔 때마다 외국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크해 교육을 혁신하겠다고 부르짖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와중에 최근 교육부 장관이 처음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우리와 함께 칭찬을 받았던 핀란드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동안 해왔던 베끼기 수법을 또다시 쓰려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국제 간 비교 연구 외에도 우리 교육의 실상을 보여 주는 자료는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 두 나라에서 대학생활을 해 본 레네 하일씨는 ‘SKY? 사양하겠어요’라는 글에서 “비판 정신은 부족했다. … ‘좋아, 이제 네 스스로 생각해 봐!’ 그러면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른다. … 한국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별로 신선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독일 뮌헨의 루트비히막시밀리언대학 교수인 에른스트 푀펠은 자신이 지도하는 한국 유학생을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지만 독창적인 지성 면에서는 처참한 낙오자”라고 조롱한다. 베끼기 교육 정책이 낳은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에게는 우리의 상황을 고려해 만들어진 교육 이론이나 교육 방법이 없다. 그 대신 다른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는 정책들을 도입하기 위해 일부 대학이나 학교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지원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듯하다가 지원이 중단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되돌아가고, 다시 새로운 정책을 찾아나서는 일이 유행처럼 반복돼 왔다. 이런 시도는 할 만큼 해 봤다.

이제는 먼저 필자를 포함한 교육 전문가들의 통렬한 반성과 함께 교육의 근본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할 때다. 입시라는 괴물은 잠시 제쳐 두고, 20년 뒤의 교육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자. 외국 사례를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상황에 맞추려면 우리 스스로 고민하면서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베끼기로는 교육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학생들에게 많은 지식을 주입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베끼기나 주입 대신 생각과 도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학생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도록 기대하고, 도전에 수반되는 실패가 끝이 아니라 가장 좋은 배움의 기회라는 것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오래 앉아 있다는 사실이 우리 교육의 자랑거리가 되게 할 수 없다. 진정한 혁신을 위해 교육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을 때다.
2019-09-30 30면
많이 본 뉴스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려면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음 중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책은 무엇일까요?
고령자 실기 적성검사 도입 
면허증 자진 반납제도 강화
고령자 안전교육 강화
운행시간 등 조건부 면허 도입
고령자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