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협동, 더불어 잘살게 하는 힘/김재균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장

[기고] 협동, 더불어 잘살게 하는 힘/김재균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장

입력 2016-11-14 21:20
수정 2016-11-1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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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균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장
김재균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장
우리나라에는 힘을 합쳐 일하는 ‘협동농기구’들이 매우 발달했다. 한꺼번에 7~8명이 함께 흙을 퍼 나르고 땅을 고르는 가래라든지,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 물을 퍼 올리는 맞두레, 역시 두 사람이 발판을 밟아 곡식을 찧는 디딜방아가 그렇다. 심지어 혼자 사용해도 되는 삽에 줄을 매어 효율성 높은 협동의 도구로 만들어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협동은 모든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독 두드러진 현상이다.

왜 우리는 협동의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을까? 협동의 가치와 효과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사자의 무리는 자신들보다 덩치가 몇 배나 큰 코끼리를 쓰러뜨리고, 작은 물고기들이 뭉쳐 크게 보이게 해 큰 물고기를 물리친다. 조상들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여 작은 힘이라도 합치는 것이 좋고, ‘개미가 절구통 물어 간다’고 할 정도로 협동의 위력을 대단하게 평가했다. 1970년대 농촌 근대화를 앞당긴 새마을운동의 기본 정신도 결국 협동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호소하면서 민족 생존의 길을 협동에서 찾기도 했다.

협동이 농업 사회에서 가장 잘 표출된 것이 두레다. 두레 정신은 협동의 바탕 위에 양보와 배려심이 녹아 있는 공동체 문화의 정수다. 농사일의 고됨을 협동으로 극복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를 형성했다. 두레 정신은 농촌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밑거름이 됐고 가족 간, 이웃 간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을 했다. 놀이문화로 즐기기도 했는데, 줄다리기를 하면서 단순한 힘의 합보다 조화와 화합의 힘이 크다는 것도 깨달았다.

협동의 미덕은 역사 기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조선 후기 농촌사회를 노래한 정학유의 ‘농가월령가’는 ‘이웃집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제 일 하듯 한다’고 협동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다. 세종실록 17년 기록에는 ‘협동주제’, 즉 협동하고 구제해 기근을 면하게 한 자에게는 관직을 주겠다면서 협동을 독려하는 내용도 있다. 고려 후기 학자인 이곡의 문집 ‘가정집’에는 ‘협동하고 화목하는 기풍이 일어나면 너그럽고 아름다운 풍속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협동이 사회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한다고 적었다.

농경사회에서 요구된 협동이 주로 육체적인 것이었다면 요즘 시대에는 지식과 기술, 정보, 사고 등 무형 자산의 협동이 필요하다. 학문 간의 융복합, 학교와 산업현장의 협력,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 도시와 농촌의 협력, 농업의 1·2·3차 역할을 아우르는 6차 산업화 등이 새로운 형태의 협동이라 하겠다. 우리가 각종 단체 운동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원인을 분석해 보면 모두 고도의 협동 시스템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는 오랜 농경 역사를 통해 축적한 아름다운 협동의 DNA가 있다. 즉 우리는 더불어 일하고 즐길 줄 아는 협동 민족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협동의 가치마저 변한 건 아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속담은 지금도 유효하다. 수확의 계절을 맞아 옛 농촌 들녘에 퍼졌던 협동의 메아리가 다시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기 바란다. 그렇게 함께 멀리 가고 더불어 잘사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2016-11-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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