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현 한국소방안전협회 회장
유엔개발계획(UNDP)에서는 매년 각국의 교육 수준, 국민소득, 평균수명 등을 척도로 삼아 인간개발지수(HDI)를 매긴다. UNDP 보고서 ‘재해 위험 저감을 위한 개발 도전’에선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케냐, 네팔 등 HDI 하위 50개국은 세계 자연재해의 11%를 차지했고 매년 사망자의 53%가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반면 HDI가 높은 경우 1.5%만이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그 차이의 원인을 배움, 즉 교육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교육의 힘은 실로 무섭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아낌없이 교육에 투자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 규모는 32조 9000억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로 평균의 3배나 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교육 영재들은 오로지 국어·영어·수학 위주로 배우고 사회에 나온다. 소화기 1대가 아닌 영어 단어 하나가 목숨을 살리게끔 사회가 만든 것이다. 재난 사고 때마다 예방을 외치지만 메아리처럼 돌아올 뿐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교수가 역설한 ‘안티프래질’(충격을 받을수록 더욱 강해지고 성장한다는 뜻)의 개념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내적 동기가 활발한 청소년기의 교육은 무척 중요하다. 행동 자체를 즐기는 능동적인 시기인 만큼 이때의 소방교육은 평생 몸에 습관으로 기억될 수 있다. 중장년기의 경우 외적 동기가 지배적이다. 행동에 보상이 필요한 수동적인 상태여서 교육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교육부는 지난해 ‘학교 안전사고 예방 3개년 기본계획’의 일환으로 ‘안전한 생활’ 초등학교 저학년용 교과서를 제작하기로 했다. 2017년부터 적용된다. 주당 1시간이란 짧은 시간이 할당돼 실효성을 판단할 순 없지만 분명 환영할 일이다. 다만 교과서 위주가 아닌 소화기 사용, 심폐소생술 실습, 피난 체험 등 기본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머리에 각인돼 즉각 반응한다.
중국 사상가 순자는 ‘봉생마중 불부이직’(蓬生麻中 不扶而直) 백사재열 여지구흑’(白沙在涅 與之俱黑)이라고 썼다. 쑥은 삼밭 사이에서 자라면 곧게 자라고 하얀 모래도 진흙에 섞이면 검게 변한다는 뜻이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소방 안전 의식을 배울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천재 피카소와 HDI 하위 국민 중 누가 후손이길 바라는가.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2016-02-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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