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생끼리 정말 왜 이래/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기고] 미생끼리 정말 왜 이래/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입력 2015-02-17 21:58
수정 2015-02-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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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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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가 지난 주말 43.1%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가족관계 회복이었는데 적어도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잘난 자식과 못난 자식 모두 부모에게는 소중하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희생한다. 자식들은 그 희생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바로 이것이 불효가 된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불효가 부모에게 주는 부도덕이 아니라 자식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족 파괴 요인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며 자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불효 소송이라는 법적 기재를 이용한다. 할 수만 있다면 소송을 해서라도 바로잡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미생’이 화제가 됐던 것은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디테일하게 소개돼 직장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는 인간의 군상들이 성공이란 목표를 향해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그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미생’은 너무나도 잘 보여 주었다.

가족과 직장 문제를 다룬 드라마가 이토록 사랑을 받은 것은 가정과 일터에서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희로애락이 대중에게 전이됐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인과 상호 작용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인간관계라고 한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연구한 이론인 인간관계론에서는 인간의 공통 욕구를 귀속과 존중이라고 했다. 사람은 가정에 소속돼 있고, 학교나 직장 나아가 국가에 귀속돼 살고 있는데 누구나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서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런 갈망이 채워지기는커녕 인간관계가 단절됐다. 성공 지향적 사회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회복되려면 신뢰와 소통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한다. 신뢰하지 않으면 소통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소통을 하지 않으면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신뢰와 소통은 상호 작용을 해야 한다. 신뢰와 소통을 잘할 수 있는 조직은 위계적 지위보다 전문성에 비중을 둬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종적인 체계로 움직이고 있어 신뢰도 소통도 실패한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개체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성숙해 가는 미생(未生)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 인질 살해 사건, 판사 뇌물수수 사건, 땅콩 회항 사건 등 우리 사회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은 신뢰하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 때문이다. 남북 갈등을 극대화하는 종북 세력, 김군의 실종으로 불거진 국제테러 등은 소통하지 못하는 잘못된 신념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가치관 혼란에서 발생했다.

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속해 있는 가정에서, 자신이 소속된 사회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며 내가 웃고, 가정이 웃고, 나아가 나라가 웃을 수 있는 가치관을 갖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행동이다.
2015-02-1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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