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쳐다보는 볼턴
2018년 5월 볼턴(왼쪽)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 모델’ 언급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의 자리에 배석했다. AFP 연합뉴스
●초강경 매파 볼턴과 트럼프의 1년 반 ‘티키타카’
애초 시작은 트럼프 대통령부터였다. 첫 북미정상회담을 두 달 앞둔 2018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초강경 네오콘인 볼턴을 자신의 안보정책 총책임자인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했다. 대화가 아닌 대결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의 만남이 어떻게 귀결될지 불길한 짐작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볼턴은 안보보좌관으로서 폭스뉴스, CNN 등과 인터뷰를 통한 첫 일성을 북한이 가장 꺼리는 ‘리비아 모델’로 시작했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 모델은 북측으로선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안이다. 또한 국가원수인 카다피의 사망까지 떠올리게 만들기에 꺼릴 수밖에 없다. 북측은 그를 가리켜 ‘사이비 우국지사’라며 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북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볼턴과 자신의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팎의 비난에도 볼턴을 감쌌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과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사이좋은 시절의 모습. AFP 연합뉴스
미군 전쟁포로 유해를 송환하는 등 북측의 약속 이행이 있었고, 비핵화의 단계적 진전 차원에서 핵실험장 폐기,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 가시적인 조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최소 4차례 이상 미국 실무협상 팀이 평양을 방문해 2차 정상회담을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를 향해 중국 대륙을 종단하며 66시간에 걸쳐 보여준 김정은 위원장의 ‘열차 로드쇼’는 서명 절차만 남은 북미관계의 새시대, 정상국가 북한의 출현에 대한 장밋빛 기대감의 예고편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합의가 예상됐던 ‘단계적 해법’이 아니라 북측에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결과는 ‘노딜’. 아무런 성과를 남지기 못한 채 북미관계는 파탄나고 말았다. 볼턴은 노딜 직후 “하노이 정상회담은 미국 이익의 보호 및 진전 측면에서 실패가 아닌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을 가리켜 종종 ‘전쟁광’(warmonger)이라고 부르곤 했지만 1년 반 동안 계속 볼턴을 껴안고 갔고, 지난해 9월에서야 그를 ‘해고’했다. 물론 볼턴은 ‘자진 사임’이라고 반박했다.
●남남 된 볼턴과 트럼프의 책임 떠넘기기 이전투구(泥田鬪狗)
몇 달 동안 벼르고 벼른 볼턴은 회고록 ‘일이 벌어지는 방’(원제:The Room Where It Happens)을 통해 신랄하고 원색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트럼프를 가리켜 “처음부터 비핵화 문제는 관심도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 회담조차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한 행사 정도로 생각했다”, “지난해 6월 판문점 회담에서도 사진을 찍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온통 재선승리에 관심이 있지만,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으로 저격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18일(현지시간) 속사포처럼 트위터를 날리며 볼턴을 원색적 비난으로 반박했다. ‘미친(wacko) 볼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주장’ 등으로 비난했고, 그는 “TV에 나와 리비아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을 때 북미 관계는 끝난 것이었다”면서 “그때 그 자리에서 잘랐어야 했는데”라고도 말했다. 볼턴의 회고록은 23일 출간될 예정이다. 트럼프 정부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외교기밀을 담고 있다면서 출판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볼턴은 주요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회고록 주요 내용을 밝혔다.
딱히 진실이랄 것도 없고, 궁금할 것도 없다. 트럼프 때문이건, 볼턴 때문이건 간에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를 위한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미국 정부가 얼마나 무원칙했고,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널뛰기 정책을 했음을 새삼스럽게 절감할 뿐이다. 또한 최근 북측이 미국과 남측 모두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대단히 폭력적으로 드러낸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 변화가 없이는 북미관계의 개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복원은 불가능에 가까움이 느껴진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동맹국가’ 미국을 믿고 한반도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으며, 이후 다시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 정책을 수립해서 풀어갈 수 있을까.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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