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름, 주소 제공해도 포털 책임 없다는 판결

[사설] 이름, 주소 제공해도 포털 책임 없다는 판결

입력 2016-03-11 20:38
수정 2016-03-1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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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등 전기통신사업자가 자체 판단 없이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겨주더라도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에 대한 통제는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을 상대로 직접 이뤄져야 하며, 전기통신사업자가 책임을 지는 것은 수사기관 등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인에게 전가해 부당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해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개인정보 제공이 남용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법원은 그제 차모씨가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현행법상 통신 내용 등은 영장이 필요하지만 이용자의 인적 사항은 수사기관의 서면 요청만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차씨는 ‘회피 연아’라는 동영상을 다른 사이트에서 퍼와 자신의 카페에 올려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후 유 전 장관은 고소를 취하했으나 차씨는 네이버를 상대로 “수사기관의 자료 요청에 응할 의무가 없으며, 개인정보 약관 의무도 어겼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네이버의 개인정보 보호 의무는 법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며 네이버의 손을 들어 주었으나, 2심 재판부는 “네이버가 전기통신사업법에 규정된 심의기구를 통해 개인정보 제공 여부와 범위를 결정했어야 했다”며 차씨의 손을 들어 줬다.

우리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전기통신사업자의 정보 제공에 대한 ‘면책특권’이 가져올 부작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소·고발이 한 해에 60만건에 이를 정도로 많다.

네이버만 해도 지난해 하반기에만 개인정보 16만건을 수사기관에 제공했다.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이동통신사로부터 받은 통신 자료만도 2012년 787만여건에서 2014년에는 1296만건으로 늘어났다. 수사라는 명목으로 개인정보를 마구 주고받으면 프라이버시는 물론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관련 법 개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사기관이 영장 청구 등 적법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 네이버 등 전기통신사업자도 정보 제공이 의무 사항이 아닌 만큼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6-03-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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