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파트 경비원에 ‘갑질’하는 부끄러운 사회

[사설] 아파트 경비원에 ‘갑질’하는 부끄러운 사회

입력 2014-10-15 00:00
수정 2014-10-15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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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경비원 이모(53)씨의 분신자살 기도가 일부 입주민의 상습적인 인격 모독과 폭언 등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근로기준법과 최저 임금의 적용도 받지 못하는 아파트 경비원들이 일부 입주민의 모멸적인 언행으로 기본적인 인권마저 침해당하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정확한 경위는 경찰 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 이번 사건은 사회적 약자이며 일상의 이웃인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갑질’을 서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되돌아보게 한다.

동료 경비원들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등은 경비원 이씨가 평소 일부 입주민의 인격 무시와 모욕적인 언행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한 입주민은 5층에서 먹다 남은 빵이나 과일을 ‘경비, 이거 먹어’라며 아래로 던졌다고 한다. 이를 먹지 않으면 왜 안 먹느냐고 질타해 이씨가 경비실 안에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동료 경비원들은 전했다.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황당한 일이다. 극히 일부 주민의 사례라고는 하지만 아파트 경비원들이 비정규직 간접고용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탓에 부당한 처우에도 꾹 참고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아파트 경비원 등 전국 55세 이상 감시·단속직 근로자의 인권상황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874명 가운데 32.5%가 언어·정신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아파트 경비원은 가해자의 84.0%가 주민이라고 답했다. 수시로 피해를 본다는 응답도 15.2%나 됐다. 그럼에도 아파트 경비원은 언제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피해 사실을 제대로 하소연할 수도 없다. 아파트 단지의 갑(甲)인 입주민대표자회가 용역·파견업체에 민원을 제기하면 억울해도 경비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아파트 경비원은 ‘을(乙) 중의 을’인 셈이다. 청소와 택배 보관, 주차 관리 등 근로계약상 본업이 아닌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싫은 내색을 할 수 없는 이유다.

아파트 경비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은 정부 정책으로 개선해 나가야 마땅하다. 그에 앞서 노년층이 대부분인 경비원을 상대로 한 일부 입주민의 몰지각하고 천박한 언행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도덕과 양식의 함몰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경비원과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교훈으로 여기고 자성할 때다.
2014-10-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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