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우리말] 자리를 빌다?/오명숙 어문부장

[똑똑 우리말] 자리를 빌다?/오명숙 어문부장

오명숙 기자
입력 2020-09-16 20:12
수정 2020-09-1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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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사람이 감사의 뜻을 전하거나 사과를 할 때 ‘자리를 빌어’서 한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자리를 빌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너무도 익숙해 잘못된 표현이란 걸 모르는 이가 허다하다.

‘빌어’는 ‘간절히 청하다’란 뜻의 동사 ‘빌다’의 활용형이다.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해 달라고 간청하거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호소할 때 쓴다. “소녀는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범인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용서를 빌었다”처럼 쓸 수 있다.

이처럼 ‘빌어’에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기회로 삼았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다. 이에 알맞은 낱말은 ‘빌려’이다.

‘빌려’는 ‘빌리다’의 활용형이다. ‘남의 물건이나 돈을 나중에 다시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란 의미가 있다. “친구에게서 책을 빌리다”와 같은 경우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란 뜻으로도 사용된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가 이런 경우다. ‘이 기회를 이용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란 뜻이다.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해 따른다’는 뜻을 나타낼 때도 ‘빌리다’가 쓰인다. “옛 성현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또는 “수필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기의 속 이야기를 풀어 갔다”와 같은 경우다. 이때도 ‘빌어’라고 쓰면 틀린 말이 된다. 헷갈릴 땐 ‘빌어’는 간청·호소·사죄를, ‘빌려’는 차용·임차를 나타낼 때 쓴다는 걸 기억하면 된다.

oms30@seoul.co.kr
2020-09-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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