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시대의 허무를 넘어서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시대의 허무를 넘어서

입력 2019-03-04 17:36
수정 2019-03-05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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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권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자이니치(在日) 문학의 빼어난 성과로 일컬어지는 김석범 작가의 대하소설 ‘화산도’에는 허무주의(nihilism)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 이방근은 수시로 깊은 허무에 빠진다. 그는 “인간은 용케도 허무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허무를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라고 말한다.

허무주의는 ‘화산도’를 관통하는 중요 주제 중 하나다. 제주 4·3이라는 미증유의 대학살과 통렬한 슬픔을 누구보다 온몸으로 통과한 이방근이 허무의 바다에 빠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다. 사실 이방근의 이런 기질은 작가 김석범을 빼닮았다. 김시종 시인과의 대화에서 김석범은 “인생의 허무감이라는 것은 굉장해”라고 토로한다. 동시에 그는 허무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언급한다. 그가 ‘화산도’ 집필에 매달린 20년이 넘는 세월은 4·3이라는 잔혹한 상처와 처연한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역정(歷程), 곧 ‘허무를 극복하는 혁명’이었다.

김석범 작가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인간과 역사에 대해 깊이 알수록 ‘허무’에 마음을 내주는 심리를 발견하곤 한다. 가령 참 아름다운 친구가 모진 병 끝에 일찍 세상을 뜨면 모든 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 몇 년 사이에도 노회찬 의원의 슬픈 죽음을 비롯해 무척이나 경외하고 좋아했던 분들이 서둘러 밤하늘의 별이 되는 걸 지켜보며 허무주의에 경도되는 내 마음을 만나곤 했다.

허무주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4년 전 어느 봄날 도쿄경제대 연구실에서 서경식 교수와 나누었던 대화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는 자신에게도 허무주의자의 면모가 있다고 고백하며 “진정한 허무주의는 자기 자신도 안전지대에 두지 않으며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해 냉소를 보이지도 않는다. ‘진보의 허위’까지 꿰뚫어 보는 감각으로서의 허무주의가 필요하다. 허무주의는 방관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에 깊게 공감했다. 그렇다. 성찰적 지성이 동반된 허무주의는 비평가 발터 베냐민이 ‘역사철학테제’에서 언급했던 ‘진보가 초래한 폐허와 야만’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하리라. 그렇다면 니체가 긍정적 니힐리즘의 순기능을 언급했듯이 허무주의가 꼭 부정적인 감정에 속하는 건 아니다. 외려 깊은 허무를 통해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힐 수도 있다. 이런 균형 감각이 지금 이 시대 정치가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충분한 실력과 성찰이 부족한 진보, 개혁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획과 공부가 미진한 진보가 때로 반동을 불러오는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회담 합의가 무산되는 장면을 보고 잠시나마 당혹감을, 허무감을 느꼈다. 그만큼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이번 결렬의 책임이 어디에 있든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토록 적대적이었던 두 국가가 단 두 번의 만남을 통해 오랜 시간의 불화를 청산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좁히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그 적대와 대립의 세월만큼이나 문제 해결 방법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 자체가 우리의 기대만큼 직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역사 등 여러 면에서 쉽게 허무와 환멸에 빠지기 쉬운 시대다. 이런 시대일수록 한층 거시적인 안목으로 현상을 바라보면서 손쉬운 부정과 경박한 허무에 손 내밀지 않는 태도, 끝끝내 진보의 난관과 개혁의 복잡함을 꿰뚫어 보며 희망을 간직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 과정에서 비약은 없으리라. 내 마음에 존재하는 균열과 모순, 허무의 심층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인간과 세상에 대해 한 단계 진전된 이해로 나아가고 싶다.

봄이다. 쉽게 선택한 허무, 안이한 절망을 넘어서 시대의 심연을 통과한 희망을 발견하는 새봄이 되기를 바란다.
2019-03-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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