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인간이 외계인과 전쟁을 하면 벌어질 일/최무림 서울대 의과학과 부교수

[금요칼럼] 인간이 외계인과 전쟁을 하면 벌어질 일/최무림 서울대 의과학과 부교수

입력 2020-12-24 16:36
수정 2020-12-25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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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림 서울대 의과학과 부교수
최무림 서울대 의과학과 부교수
평화로운 지구에 느닷없이 외계인이 침공한다. 흔한 할리우드 영화라면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다양한 영웅들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 영웅들의 화려한 모험 아래에 숨어 있는, 당신이 먹고 있는 팝콘만큼도 신경 쓰이지 않을 이름 없는 과학자들만의 모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이 광활한 우주를 뚫고 항성 간 항해를 해서 지구까지 도달했는지, 아니 애초에 지구는 어떻게 찾았는지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기계공학자들은 그들이 타고 다니는 작고 빠른 날아다니는 것들이 어떻게 그렇게 효율적으로 기동할 수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고, 어떻게 그들의 무기들이 작동하는지 알아내려 할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그들의 몸을 연구해 치명적인 부분을 찾아내려 노력할 것이고, 그들이 어떻게 생식하는지, 무엇을 먹고 싸는지, 어떻게 주위를 보고 느끼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의학자들은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에게서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 그들의 무기에 공격당하면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연구할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그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 사회학자들은 그들 간 어떤 계급 구조가 작동하는지 알아낼 것이다. 하지만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보며 아무도 이러한 지난한 작업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보통 이렇게 힘들게 얻어낸 정보는 처연하게 외계인과 싸우러 나서는 주인공에게 던져지는 이런 조언들로 치환된다. “이 녀석들은 심장이 두 개인데 그중 오른쪽 심장을 노려”라든지 “최루액을 맞으면 녀석들의 활동이 10초간 멈춰”. 물론 이런 류의 정보는 보통 복선이 돼 주인공이 지구를 구할 때 큰 도움을 주고 흥미를 더하긴 한다.

평화로운 지구에 느닷없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침공한다. 의학자들은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의 증상을 이해하고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을 알아내려 한다. 미생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기존 것들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어떻게 유래했는지 연구한다. 유전학자들은 바이러스의 변종이 어떻게 생성되고 전파되는지를 따라가며, 생화학자들은 어떤 기작으로 이 바이러스가 인체 내 세포로 들어와서 세포를 아프게 하는지를 관찰한다. 보건학자들은 나이, 지역에 따라 어떻게 치명률이 달라지는지를 알아보고, 약학자들은 어떤 약제를 합성해 바이러스의 활성을 막을 수 있을지 탐색한다. 심리학자들은 바이러스의 창궐로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받는지 연구한다. 사회학자들은 국가마다 다른 바이러스 대응과 거리두기로 제약되는 인간의 개인 활동이 어떻게 제어돼야 할지 고민한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이 낯선 존재와 싸우는, 우리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과학자들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신문지상에서 볼 수 있는 백신, 치료제 연구 등으로 그 영웅의 도래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과학계도 전형적인 빙산, 혹은 피라미드의 구조를 띤다. 실제로 일반인에게 보여지는 커다란 과학적 업적을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성과들이 바탕이 돼 있다. 세계적인 연구 규모에 비교하면 작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수백, 수천명의 과학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를 하고 있고 이미 수백개의 새로운 물질들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워 보기 위해 대기 중이다. 이렇게 한 가지의 주제를 대상으로 다방면의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예는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힘들 것이며, 이제 우리는 사상 초유의 속도로 새로운 형태의 백신이 개발돼 인간에게 접종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과연 인류가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아래에 깔려 있는 모든 디테일은 몰라도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외면받기 일쑤인, 그런 과학자들의 소중한 연구 한 땀 한 땀이 현실에서는 결국 코로나를 물리칠 것이다.

2020-12-2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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