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코로나19와 집단기억력/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코로나19와 집단기억력/황두진 건축가

입력 2020-11-12 20:40
수정 2020-11-1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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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건축가
황두진 건축가
분야를 막론하고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흐른다. 소위 ‘뉴노멀’은 어느덧 ‘노멀’이 돼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확진자 증가 추세는 여전하지만 사망자 비율은 그렇지 않고, 게다가 백신 개발 관련 뉴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근본적으로 확 변할 것 같지는 않다는 낙관적인 생각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항상 모험이다. 코로나19처럼 기본적으로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비전문가가 상식과 추측으로 접근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때로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적어도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방식이나 태도에 대한 교훈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집단 기억력에 대한 의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18년에 발생했던 ‘스페인 독감’은 이런 점에서 참고가 된다. 유행했던 기간은 불과 1년 남짓. 그러나 그 피해는 엄청나서 어떤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50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무오년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백범 김구 선생도 상하이에서 감염됐다. 당시 한반도 인구 1670만 명 중 742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14만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현재까지의 추세로만 보면 코로나19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존재였던 셈이다.

그런데 스페인 독감은 그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대역병, 이를테면 중세의 흑사병 등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학의 발전이었다. 도저히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공포에 시달리며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경험, 혹은 주술과 신앙으로만 대처해야 했던 중세와는 달랐다. 박테리아는 1676년 네덜란드의 레이우엔훅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고,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최초의 백신인 천연두 백신도 이미 18세기 말에 개발됐다.

스페인 독감 당시의 기록을 읽어 보면 당시의 대처는 요즘과 원리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격리는 중세부터 시행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 필요성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구글에 들어가 당시의 사진을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럽에서 극동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그전과는 사뭇 다른 방식과 태도로 대역병에 대처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마스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비용, 효과, 간편성 등의 종합적 관점에서 마스크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효과적인 전염병 대처 수단이다. 결국 논쟁은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방역 초기의 그 귀중한 시간을 조금 더 단축할 수는 없었을까? 심지어 질병관리청조차 올해 3월 초까지도 ‘일반인 마스크 착용은 불필요’라고 발표했다. 마스크 무용론, 제한적 효과설, 심지어 아예 대놓고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주장이 등장한 것도 10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즉 모두 역사에 기록돼 있던 일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고, 그 덕분에 100년 전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기억력이 종종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만약 코로나19가 현재 상황 이상으로 확대되지 않고 종식된다면,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 모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잊고 말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다른 역병이 발생하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인지.
2020-11-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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