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해는 암기의 반대말이었다. 시험이 대체로 한 사람의 암기능력을 확인하는 데 그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공부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이들은 단순한 암기가 아닌 이해를 강조했다. 나도 그들을 따랐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할 때는 개념의 다양한 응용을 알려주며 동시에 암기가 아닌 이해를 요구했다. 때론 학생들이,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이해란 무엇일까?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배운 그대로가 아닌 자신의 말, 자신의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지식과 새롭게 배운 사실의 관계를 파악해 이들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뒤로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그들이 배운 새로운 개념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도록 시켰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해’란 절대 ‘언어’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물론 최초의 깨달음은 종종 비언어적 형태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표현해 주는 이를 작가라고 했던가. 어쨌든 자신이 이해한 바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의 옷을 입혀야만 한다. 미래의 자신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인 기억을 활용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단정적인 주장이 반발을 가져오듯 암기에 대한 과도한 격하에도 반발이 따랐다. 이들은 암기 자체가 가진 힘을 역설했고 결국 이해란 암기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암기가 개념들의 무작위한 나열이라면 이해는 그 개념들에 순서와 관계를 부여해 하나의 개념이 다른 개념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식으로 작동한다. 실생활에서 많은 경우 이해는 암기를 위해, 즉 손쉬운 지식의 인출을 위해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분야에서 가능한 문제와 답을 완벽하게 암기할 수 있다면 그는 그 분야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암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훨씬 더 많은 상황이 있다. 그 경우 우리는 다시 근본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마치 정반합의 논리처럼 오늘날 이해와 암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가 됐다. 이해는 암기에 도움이 되며 암기 또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는 그 분야의 특징, 곧 그 분야가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정해진 답을 적용하는 분야인지 또는 늘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며 근본적인 원리를 끊임없이 응용해야 하는 분야인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느새 인공지능의 시대가 다가왔다. 우리는 컴퓨터가 암기에 인간보다 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이해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얼마 전 구글이 발명한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구글의 프로그래머들은 1만 8900개 영화의 대사를 이용해 이 프로그램이 모호한 질문이 주어져도 적당한 답을 내도록 훈련시켰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게 “인생의 목적이 뭐지”라고 물었을 때, 프로그램은 “세상을 더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놀라운 답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쉽게 한계를 드러냈다. 고양이의 다리가 몇 개인지라는 질문에는 ‘네 개’라는 답을 하지만, 지네의 다리가 몇 개인지 묻자 ‘여덟 개’라 답했단다. 저자는 ‘이 프로그램은 그저 단어들의 조합을 알 뿐 실제 세상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지네가 무엇인지를 이 프로그램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다행히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 수준의 이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강점으로써, 이해에 대한 강조가 더욱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이효석 뉴스페퍼민트 대표
하지만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암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훨씬 더 많은 상황이 있다. 그 경우 우리는 다시 근본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마치 정반합의 논리처럼 오늘날 이해와 암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가 됐다. 이해는 암기에 도움이 되며 암기 또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는 그 분야의 특징, 곧 그 분야가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정해진 답을 적용하는 분야인지 또는 늘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며 근본적인 원리를 끊임없이 응용해야 하는 분야인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느새 인공지능의 시대가 다가왔다. 우리는 컴퓨터가 암기에 인간보다 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이해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얼마 전 구글이 발명한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구글의 프로그래머들은 1만 8900개 영화의 대사를 이용해 이 프로그램이 모호한 질문이 주어져도 적당한 답을 내도록 훈련시켰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게 “인생의 목적이 뭐지”라고 물었을 때, 프로그램은 “세상을 더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놀라운 답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쉽게 한계를 드러냈다. 고양이의 다리가 몇 개인지라는 질문에는 ‘네 개’라는 답을 하지만, 지네의 다리가 몇 개인지 묻자 ‘여덟 개’라 답했단다. 저자는 ‘이 프로그램은 그저 단어들의 조합을 알 뿐 실제 세상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지네가 무엇인지를 이 프로그램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다행히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 수준의 이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강점으로써, 이해에 대한 강조가 더욱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2016-12-2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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