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의 유레카] 모든 과학자에게 필요한 워라밸/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이은경의 유레카] 모든 과학자에게 필요한 워라밸/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입력 2021-10-11 20:32
수정 2021-10-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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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올해 정부와 국회는 여성 과학자의 일·가정 양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관부처의 실천과제 탐색, 관련 내용을 포함한 법안 발의 등이 있었다. 여성 과학자들이 출산과 육아를 가장 큰 장애로 여기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 불평등이 지금보다 심했을 때 여성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마리 퀴리, 리제 마이트너, 캐슬린 론즈데일 등 이 3명의 사례를 보자.

이들은 과학자로서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 차별을 극복하고 각자의 연구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고, 여러 번 ‘최초의 여성’ 타이틀을 기록했다. 그리고 많은 후대 여성 과학자들에게 역할모델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퀴리는 ‘라듐’을 발견했고 방사성물질에 대한 연구로 노벨 과학상을 두 번 받았고, 소르본대학 최초의 여성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독일에서 활동한 마이트너는 ‘프로트악티늄’을 발견했고 원자력 에너지 기술의 출발점이 된 핵분열 현상을 규명했다. 그녀는 빈대학 첫 여성 물리학 박사였고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과학 분야 여성 정교수가 되었다. 영국 과학자 론즈데일은 엑스선을 이용해 벤젠고리가 납작한 구조임을 규명했고 엑스선 결정학 초기에 데이터 분석 방법을 정립했다. 그녀는 런던대(UCL)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첫 여성 교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영국 왕립학회와 영국과학진흥협회의 첫 여성 회장으로 뽑혔다.
그렇지만 육아 문제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마이트너는 평생 독신이었기 때문에 육아 문제가 없었다. 론즈데일은 육아 문제를 해결한 후에 연구에 본격 몰두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석사학위를 받은 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브래그가 이끄는 왕립연구소의 엑스선 결정학 연구팀에 합류했다. 결혼하고 다른 지역에서 지내던 시기에는 가사와 육아를 하면서 집에서 혼자 연구했다. 그녀가 다시 왕립연구소로 돌아왔을 때 브래그는 그녀에게 급여 외에 육아도우미를 고용할 비용을 지급했다. 브래그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연구비 덕분이었고 당시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퀴리는 연구 초기에 첫째 딸을 낳았는데, 시아버지가 아들 부부의 집으로 이사 와서 손녀를 돌봤다. 노벨상을 받은 후 직장이 생기고 피에르 퀴리가 사망했을 때는 둘째 딸도 태어난 뒤였다. 시아버지 사망 전까지는 시아버지와 도우미로부터 육아 도움을 받았다.

육아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했던 이 선구자들과 비교하면 오늘날 여성 과학자들은 보육기관, 출산휴가, 육아휴직, 아동 수당, 유연근무 등 다양한 지원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도들은 과학연구의 특징이 반영되지 못해 실효성이 낮다. 여성 과학자, 특히 연구과제 책임자의 경우 육아휴직을 하려면 과제 종료 기간 연장, 연장된 기간 동안 실험실을 운영할 추가 지원 등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경력 중단을 감수해야만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여성 과학자의 일·가정 양립 논의에서 ‘가정’의 문제는 육아, 그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가족의 형태와 가족 내 육아의 주체가 다양해지는 사회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의 논의는 과학자의 일·가정 양립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청년 과학자, 중견 과학자, 소속 기관 등 연구 현장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여성 과학자의 일·가정 양립 지원은 론즈데일과 퀴리 시대에 비해 별로 나아가지 못한다.
2021-10-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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