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홍 논설위원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일요일 밤, 잠든 내무반(생활관)에서 등골이 오싹해진 일이 일어났다. “전부 기상”이란 목소리에 비몽사몽간에 침상 끝에 꼿꼿이 섰다. 술을 마신 선임병이 군기를 잡는다며 소대원들을 깨운 것이다. 일은 잠시 후 벌어졌다. 이른바 ‘갈참 병장’(제대 말년 병장)이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와 “왜 그래”로 실랑이가 오가더니 술 취한 선임병이 박격포 포판을 들고 내리치려고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잡아챘고, 누웠던 고참 병장도 잽싸게 피했다. 군생활 내내 소대원들에게 ‘포판 사건’으로 불렸다.
다음날 아침 출근한 인사계가 내무반에 들어섰다. 그는 소대장직을 겸하고 있었다. 모두가 “올 것이 왔다”며 바짝 긴장했는데, 웬걸 사건의 당사자인 선임병에게 장난을 거는 게 아닌가. 짧은 다리로 장난 발길질을 하는가 싶더니 침상에서 씨름하듯 뒹굴기도 했다. 이후 내무반의 분위기는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며칠 간 선임병과의 장난은 이어졌다. 이는 그가 평소에 하던 스킨십이고, 무거운 분위기는 언제나 평정이 됐다. 그 선임병을 불러 따끔히 충고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려졌다.
제대한 지 10여년 만에 부대 인근에 살던 그를 찾은 적이 있다. 퇴직을 하고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었다. 얘기 도중에 그가 불쑥 내민 것은 군생활을 같이한 이들의 주소록이었다. 대학 교수와 사업가, 연구원 등 수십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도움을 주려고 만들어 건넸다고 했다. 고단한 군생활에서 큰 형님 같고, 엄마의 품과 같은 안식처 역할을 해준 보답이었을 것이다.
병영사고 소식이 연일 이어진다. 군 당국은 병사 상담을 강화하려고 ‘인권 교관’을 두겠다고 한다. 이를 접하는 예비역들은 항시 지근에서 보살펴 주던 인사계를 떠올렸을 듯하다. 중대장과 소대장도 범접하기 힘들었던 ‘인사계의 리더십’이 아쉬운 때다. 군 당국은 이들이 부대원을 돌보던 DNA에서 병영생활의 해법을 찾으면 어떨까. 넉넉한 큰 형님과 같은 역할 말이다.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4-08-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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