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지난 토요일인 12일 오후 5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간인 강남역 11번 출구를 지나가던 한 50대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서 벌써 60여일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및 재발방지 특별법’ 서명을 받는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담담하게 “우리의 서명이 유가족들에게 절실합니다. 서명해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특별법 청원 서명자는 ‘앵그리 맘’이란 여성이 압도적이었다. 강남역답게 20, 30대의 멋진 여성이 주이고 아이스 커피를 든 60대 여성도 참여하는 등 여성이 80% 정도다. 1000만원대 샤넬 백이나 300만원대 루이비통 가방을 든 20, 30대 여성들의 서명은 신기했다. 일찌감치 많이 찍어놓은 탓에 ‘실종자 14명’이라고 적힌 유인물에 “11명이 아니냐”며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이던 40대 아저씨도 끝내는 서명했다.
416개의 노란 상자에 담겨 15일 국회에 전달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청원’ 350만 1266명의 서명은 이처럼 5~7월 땡볕과 ‘정치적 악용’아니냐는 견제를 견디며 나온 것이다. 국회가 16일까지 제정하겠다던 세월호 특별법은 오히려 유가족의 바람과는 큰 차이가 있다. 여론이 나빠지는 ‘단원고 학생 특례입학 허용’이나 ‘의사자 지정 요청’과 같은 특혜는 정치권의 제안이다. 유가족이 대한변협의 도움으로 제출한 특별법은 ‘그런 특혜’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충분한 조사 기간과 조사위원회에 유족들의 참여 보장 등을 요구했다. 여당이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며 난색을 보인 ‘기소권’도 포함됐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주인공인 미국 경제학자 존 내시는 상대방이 취할 전략을 기초로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행동할 때 나타나는 균형이 ‘내시균형’(Nash’s equilibrium)이라는 게임이론을 내놓았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방이 비협조적일 것을 가정하고 행동하다 보면 더 나쁜 결과를 얻는 것이다. 이를 적용해보면 여당과 정부가 비협조적인 가운데 유가족들이 더 강도 높게 ‘제대로 된’ 특별법 청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과 유가족의 만족도가 서로 다른 탓이다.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거듭 발뺌하는 대신 자료를 성실히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가족과 국민의 눈물을 한 방울씩 닦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세월호 유가족이 국민 서명을 요청하는 일도, 단식을 하는 일도 없고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도 자유로웠을 텐데 말이다.
symun@seoul.co.kr
문소영 논설위원
416개의 노란 상자에 담겨 15일 국회에 전달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청원’ 350만 1266명의 서명은 이처럼 5~7월 땡볕과 ‘정치적 악용’아니냐는 견제를 견디며 나온 것이다. 국회가 16일까지 제정하겠다던 세월호 특별법은 오히려 유가족의 바람과는 큰 차이가 있다. 여론이 나빠지는 ‘단원고 학생 특례입학 허용’이나 ‘의사자 지정 요청’과 같은 특혜는 정치권의 제안이다. 유가족이 대한변협의 도움으로 제출한 특별법은 ‘그런 특혜’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충분한 조사 기간과 조사위원회에 유족들의 참여 보장 등을 요구했다. 여당이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며 난색을 보인 ‘기소권’도 포함됐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주인공인 미국 경제학자 존 내시는 상대방이 취할 전략을 기초로 자신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행동할 때 나타나는 균형이 ‘내시균형’(Nash’s equilibrium)이라는 게임이론을 내놓았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방이 비협조적일 것을 가정하고 행동하다 보면 더 나쁜 결과를 얻는 것이다. 이를 적용해보면 여당과 정부가 비협조적인 가운데 유가족들이 더 강도 높게 ‘제대로 된’ 특별법 청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과 유가족의 만족도가 서로 다른 탓이다.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거듭 발뺌하는 대신 자료를 성실히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가족과 국민의 눈물을 한 방울씩 닦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세월호 유가족이 국민 서명을 요청하는 일도, 단식을 하는 일도 없고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도 자유로웠을 텐데 말이다.
symun@seoul.co.kr
2014-07-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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