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환 논설위원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개조’ 논의가 한창이다. 대통령은 개혁과 대변혁을 약속했다. 304명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 혁신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관피아’ 척결이며 공직 충원시스템 개혁이며 국가 개조의 각론 또한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폐단은 고쳐야 하지 알면서도 쌓아둬서는 안 된다. 수십년 적폐, 아니 수백년 적폐라면 더더욱 단칼에 무너뜨려야 한다.
하지만 관피아를 척결한다고, 공직 충원 시스템을 개혁한다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라로 탈바꿈할까.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가 정작 다른 데 있는 건 아닐까. 많은 사회학자들이 지금의 한국사회를 진단하며 경쟁의 내면화를 우려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극도의 경쟁이 일상화돼 사람들이 행복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팔꿈치로 옆 사람을 밀쳐내며 속도경쟁을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돼버렸다는 얘기다. 실제 정부도, 사회도, 기업도, 학교도, 개인도, ‘빨리빨리, 더 빨리’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도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차창을 꽁꽁 닫고 도로를 질주하는 운전자처럼 속도를 체감하지 못한 채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더욱 가속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길 위의 작은 돌멩이 하나만으로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세월호의 비극도 그렇게 잉태됐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성장 속도와 사회 안전을 맞교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는 스스로 차창을 내려야 한다. 그 엄청난 속도를 실감하고,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야 한다. 잠시 차량을 갓길에 세우고 숨 고르기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모두 신선한 외부 공기가 필요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그걸 일깨워줬다. 그들은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바보들아, 문제는 너무 빠른 속도였단 말이야!’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2014-05-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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