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환의 시시콜콜] 여론조사의 함정

[박홍환의 시시콜콜] 여론조사의 함정

입력 2014-05-14 00:00
수정 2014-05-14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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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환 논설위원
박홍환 논설위원
조선시대 최고의 군주로 꼽히는 정조대왕은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미복잠행했다고 한다. 평복을 하고 신분을 숨긴 채 도성 안 저잣거리 주막에서 장삼이사(張三李四)들과 막걸리 사발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조대왕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술자리의 장씨가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인다. “도대체 조정의 인간들은 뭐하는 거여. 지난여름 홍수 때문에 소출이 말도 아닌데 뭔 쌀을 작년보다 더 거두냐고.” 그러자 이씨가 한마디 거든다. “임금이 문제야. 구중심처에서 꼼짝도 안 하니 도대체 백성들이 풀을 먹는지, 밥을 먹는지 알 수 있겠어?” 말단 관리는 물론 왕과 중신들에 대한 비난과 원망이 쏟아진다. 신하들에게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필부들의 생생한 목소리다. 이보다 정확한 대면 여론조사가 또 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급전직하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5월 둘째 주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51.8%로 최근 한 달 사이 20% 정도 떨어졌다. 부정적 평가는 41.2%로 1월 이후 17주 만에 또다시 40%대로 올라섰다. 참사 초기 대응 실패, 관료들의 부적절한 언행, 간접사과 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3개월여 동안 역대 최고 수준의 견고하고도 높은 지지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니 만기친람이니, ‘깨알 리더십’이니, 소통부재니 하는 ‘한 줌’ 부정적 여론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 고쳐진 흔적도 별로 없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그토록 견고했던 지지도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앉았다. 전화 여론조사의 함정, 숫자의 허상에 현혹돼 자만하지 않았는지 박 대통령 스스로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박 대통령에게는 아직도 1373일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남아 있다. 이제 고작 임기의 4분의1이 지나갔을 뿐이다. 그때그때 오르락내리락하는 여론조사 결과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겠지만 여론조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작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지하는 국민은 물론 반대하는 국민들까지도 끌어안고 가는 포용과 소통이다. 그러자면 정조대왕의 주막 미복잠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판 여론까지 가감 없이 듣겠다는 열린 자세로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여론조사는 분명 과학이지만 어쩌겠는가, 박 대통령은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인 것을.





stinger@seoul.co.kr
2014-05-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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